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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가 틀 개조’, 정치세력 기득권 포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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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개헌검토의 필요성과 선거제도·행정구역 개편을 제안했다. 이런 문제 제기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대선·총선·지방선거에 재·보선까지 선거가 너무 잦아 과도한 정치·사회적 비용이 지출되어 왔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특정지역 ‘싹쓸이’ 제도여서 지역감정 해소에 역행한다.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시·군·구 행정구역제도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행정의 효율만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렇듯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이런 제안은 국가의 틀을 바꾸는 중대한 문제여서 보다 신중하고 종합적인 접근법이 요구된다.

개헌만 보더라도 대통령은 선거 횟수를 줄이는 논의만 언급하고 대변인이 “필요하다면 개헌도 논의할 수 있다”며 불씨를 지폈다. 개헌논의에서 선거횟수는 한 부분이다. 대통령 임기와 중임 여부, 부통령제 여부,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그리고 통일·경제·인권 조항의 변경 등 개헌엔 중요 이슈가 많다. 개헌 필요성을 언급하려면 대통령은 보다 과감하고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방식을 동원해야 한다. 우리는 대통령과 정치권이 개헌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해 왔다. 일부에선 개헌논의가 시작되면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질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성급한 걱정이다. 개헌은 국가대계를 준비하는 것이고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개헌과 별개로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다. 대통령과 정치권은 일단 개헌이라는 큰 틀을 정하고 이에 맞추어 선거구제나 행정구역 개편을 진행하는 것이 옳은 방향일 것이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작은 그림을 맞춰 나가는 식이다.

개헌도 그렇지만 선거구제나 행정구역의 개편도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 지금의 소선거구제(1구1인제)는 헌법과 마찬가지로 1987년 체제의 산물이다. 그동안 영남·호남·충청을 특정 정당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지역편중을 보여 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1구에서 2~5인을 뽑는 중·대선거구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검토할 수 있는데 문제는 기득권의 포기다. 한나라당에선 벌써부터 의석이 줄까봐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늘리는 것보다 민주당이 영남에서 늘릴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보는 것이다.

행정구역 개편도 핵심 장애는 정치세력의 기득권 문제다. 구체적인 차이는 있지만 대개 2~5개의 시·군·구를 합쳐 전국을 70여 개의 자치단체로 바꾸는 방안 등이 여야 간에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행정구역 개편은 선거구제 변경과 맞물려 있을 뿐만 아니라, 현행 제도에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 장·의원들의 기득권이 걸려 있어 매우 복잡한 사안이 되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요지부동의 지역감정이나, 비효율적인 행정구역을 방치하고선 우리나라가 선진화의 길로 도저히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여당이 좀 손해를 봐도 꼭 이뤄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말로 그쳐서는 안 되고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국가를 위해 봉사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정치인·공무원 등도 이제는 국익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