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은행들 아직 정신 못차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은행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감축한 인원을 은밀히 다시 대거 고용해 은행장 2명을 포함한 임원들이 문책경고를 받았다.

은행감독원에 따르면 외환은행은 희망퇴직인원 1천3백82명중 84.7%에 해당하는 1천1백71명을 퇴직당시 월평균급여와 같은 수준으로 3개월간 재고용해 연간 4백70억원의 추가손실을 가져왔으며 조흥은행도 퇴직인원의 47.3%인 1천1백80명을 6개월~1년간 재고용해 1백99억원을 낭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두 은행은 조건부로 생존을 승인받고 현재 경영정상화 과정을 밟고 있는 처지다.

이런 도덕적 해이가 있을 수 있는가.

구조조정의 근본정신을 흐트러뜨리고 사회적 비용을 덜어주기는커녕 도리어 부담을 추가로 떠안기는 처사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두 은행과 함께 조건부 생존승인을 받은 여타 7개은행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도 이 사실을 알면서 뒤늦게 일부 은행에 대해서만 조사에 나서는 등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조건부승인 9개 은행과 서울.제일은행은 지난 10월 경비를 줄여 효율성을 높이라는 금융감독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전 직원중 32%를 줄인 바 있다.

이 32% 감축의 기준은 국내 외국계은행의 행원 1인당 효율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국내은행들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문을 닫는 것보다는 낫다는 절박한 현실인식에 따라 그 고통을 감내했었다.

퇴직행원을 재고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집에서 쉬다 다시 일손이 필요하면 복귀하는 일시귀휴 (레이오프) 도 얼마든지 있다.

업무의 연속성 유지를 위해 경력 및 전문직의 경우 퇴직자의 재고용이 유리할 수도 있다.

문제는 '과다한 재고용' 에 있다.

30~40%에서 최고 85%까지 재고용한다면 구조조정은 왜 하는가.

금융 구조조정이 1차 끝났다고 하지만 국제결제은행 (BIS) 자기자본비율 등 양적 (量的) 기준을 겨우 맞췄을 뿐 질적 기능회복은 아직도 요원하다.

무수익여신은 날로 늘고, 합병이나 외자유치가 지지부진해 경영진에 퇴진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은행정상화에 투입되는 공적 자금은 초기단계에서 64조원이고 앞으로 얼마가 더 들어갈지 그야말로 블랙홀이다.

부실을 도려내고 책임경영체제로 체질을 개선하기는커녕 '구조조정이 일단락됐다' 는 느슨한 분위기에 편승해 다시 옛날로 돌아가려는가.

당국 또한 이같은 도덕적 해이를 적당히 덮어서 될 일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