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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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제6장 두 행상

승희는 난감했다.

조욱제씨를 뒤따라가서 패악을 부리기는커녕 넋두리조차 늘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식당 밖으로 나와서 한길 쪽으로 사라지는 사람과 송아지의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서고 말았다.

원래는 안동까지 가기로 작정한 것이었는데, 변상을 받아야겠다는 승희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영양읍내의 여인숙에 숙소를 잡은 것이었다.

숙소는 황용천 다리 근처였다.

여인숙 밖에서 승희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변씨가 먼저 그녀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임자가 나타났던가?" 승희는 대꾸는 않고 고개만 가로 저었다.

변씨가 아는 척을 하였다.

"소를 다리 난간에 매어두면, 임자를 찾아내기란 그 소 몰고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어려울 걸. 송아지 옆에 죽치고 앉아서 주인놈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미련한 놈들을 보자니까 기가 차서 울화가 치밀더군. 그게 어디 될법한 일인가.

나한테 맡겨 주었더라면, 늦어도 한 시간 안에 주인이란 위인을 찾아냈을 게야. 그런 소동끝에 주인놈이 자진해서 나타날 리는 없을 것이고 소를 미끼로 해서 주인을 찾아내는 방법밖에는 없겠는데, 그러려면 소를 매지 말고 고삐를 풀어 둬야 하는 게야. 고삐가 매어 있지 않으면 그 소가 어딜 가겠나. 지 혼자서 여물통이 기다리는 집으로 어슬렁거리고 찾아가게 되어 있는 게야. 미욱한 짐승이 바로 소라는 말은 있지만, 그 소만큼 제 집으로 가는 길을 달달 외고 있는 짐승도 없다는 것을 알았어야지. 맹추 같은 인간들. 소보다 더 미련한 인간들이 뭘 팔아 먹겠다고 보따리 싸들고 이장 저장 헤매고 다니는지 내가 보기엔 가당치도 않더군. 진돗개가 몇 백리 밖에 있는 제 집구석을 찾아간다는 소문만 무성했지 소가 제 집을 여축없이 찾아낸다는 소문은 왜들 모른 척하는지 알 수 없더군. "

"그럼 왜 진작 내한테 귀띔하지 않았죠?"

"속모르는 소리 작작해. 그 송아지 임자란 놈이 데모하고 있다는 걸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어. 요사이 시골 농민들 화약고란 걸 몰라? 화약고가 아니고, 손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지는 뇌관이여. 돼지 값이 똥값 된 것은 너도 나도 축사를 지어서 과잉사육돼서 자초한 것이란 말도 있지만 소는 그게 아녀. 소는 전통적으로 농민들에게 재산목록 1호로 취급되던 것이기 때문에 소값이 폭락하면 축산업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농촌사람들 모두가 심리적으로 몰락하고 말았다는 충격을 받게 되어 있어. 그걸 요새놈들 말로 정서적 공황이란 게야. 그런 처지에 있는 소 임자가 데모를 벌인 것이 확연한데, 내가 잘난 체하고 나선다면, 낮에 겪은 소동쯤으로 끝날것 같애? 누가 비위를 건드려 주기를 학수고대하고 벌인 짓이란 게 눈에 빤히 보이는데, 미쳤다고 충동질하고 나설까?"

"밥통이 박살난 내 처지는 염두에 두지 않고 국가적 고민만 생각하고 있었군요. 이제 봤더니 변선생도 핏대 올리고 삿대질 좋아하는 국회의원들 뺨치고 나설 애국자시네. "

"비꼬지 말어. 변상은 우리가 해줄거니까. 너무 상심할 것 없어. 추운데 그만 들어가. "

"애지중지하던 밥통을 엎지른 주제에 따뜻한 방에 들어가 몸을 덥힐 염치가 있겠어요. " "염치 없다니 그런 궤변하지 말어. 삿대질로 날밤을 새워도 세비는 꼬박꼬박 챙기는 사람들은 밤마다 뜨끈뜨끈한 방에서 잠자고 일어날텐데, 승희가 염치 없어할 까닭이 없지. "

승희는 송아지를 몰고 가던 사람이 바로 아침나절에 맞선을 보았던 당사자였다는 것을 발설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필경 행중의 놀림감이 될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조욱제씨의 시위에는 농 삼아 말할 수 없는 위압감과 쓸쓸한 풍경이 그려져 있었다.

더욱이나 사람과 송아지가 걸어가면서 한길 바닥에 그려놓던 그림자의 명멸

이 승희의 뇌리에 깊게 남았다.

방으로 들어갔을 땐 철규와 태호는 소주병을 놓고 마주 앉아 있었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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