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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DJ 때 전직 대통령 제일 행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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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두환 전 대통령(右)이 14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입원 중인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김 전 대통령의 쾌유를 빌었다. 전 전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며 VIP 병동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도훈 인턴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14일 오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병문안하기 위해서였다. 경찰 등 경호인력 60여 명도 배치됐다.

DJ와 전 전 대통령의 인연은 우리 정치사의 가장 큰 악연 중 하나였다. 전 전 대통령은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면서 DJ를 체포했다. 곧이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라 규정하고 군사법정에서 DJ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82년 12월 형집행 정지로 풀려난 DJ는 곧바로 미국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이런 사연에도 전 전 대통령을 맞이하는 DJ 측의 반응은 덤덤했다. 전날 병문안 의사를 타진했을 때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오래전에 화해의 제스처가 있었기 때문”(박지원 의원)이었다. DJ는 98년 대통령 취임 후 수차례 전 전 대통령을 청와대로 초청하는 등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했다. 발행을 앞둔 DJ의 자서전에는 “죽음 직전의 고초까지 안겨준 전 전 대통령을 신앙적으로 용서하려고 노력했다”는 언급이 담겨 있다. 전 전 대통령도 두 아들(재국·재용)을 동교동에 보내 문안인사를 하는 등 공을 들였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이희호 여사를 만나 “김대중 대통령이 현직에 계실 때 전직들이 제일 행복했다”고 말했다. 퇴임한 뒤 백담사 유배(노태우 대통령 시절), 감옥행(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고초를 겪었던 전 전 대통령을 청와대로 처음 초청한 이가 DJ다.

DJ가 98년 7월 31일 전직 대통령 내외를 초청해 연 첫 만찬에서 그는 “대통령이 하시는 일에 우리의 힘을 합치자”며 건배를 제의했을 정도로 무척 고무됐었다고 한다. 자신의 재임 시절과 달라진 청와대의 모습을 보고 DJ에게 “내부를 한번 살펴보고 싶다”는 부탁도 했었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이희호 여사에게 “우리나라 의료진이 세계적 수준이니까 김 대통령도 결과가 좋으실 것”이라며 “영부인도 기도를 많이 해주신다니 건강 회복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 여사와 전 전 대통령의 인연도 엷지 않다. DJ가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이 여사는 석방을 요청하려 전 전 대통령과 2시간 가까이 독대했었다. 차남 홍업씨의 결혼과 관련해선 “(전 전 대통령에게) 빚을 졌다”(자서전 『동행』 중)고 했다. “당시 감사원 고위 관료였던 사돈이 야당 지도자와 결혼하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보이지 않게 배려한 데 대한 것”(장성민 전 의원)이란 설명이다.

글=권호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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