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알면 더 재밌다] 21. "여자에게 800m는 너무 가혹한 종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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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의 여자 육상 800m 출발 장면.

"200m가 넘는 달리기는 여성에겐 너무 가혹해." 이런 얘기가 불과 40여년 전까지 올림픽에서 통했다. 여자 육상이 처음 채택된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치러진 여자 육상 종목은 100m.800m 달리기와 400m 릴레이, 그리고 높이뛰기와 원반 던지기 등 5개였다. 1900년 파리 대회 때부터 여성도 올림픽에 참가하기는 했다. 하지만 테니스.양궁.골프 등에만 국한됐었다. 따라서 고대올림픽의 전통을 이은 육상에서의 첫 여성 참가는 충분히 관심거리였다.

한데 800m 달리기에서 골인을 앞두고 선수 9명이 무더기로 실신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이것이 계기였다. 쿠베르탱 남작이 이끄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육상연맹(IAAF)은 이렇게 결정했다. '여자 달리기는 200m까지만 한다'. 여자에게 800m는 너무 가혹한 종목이라는 것이 그때의 결론이었다. "여자는 남자 선수에게 찬사와 박수를 보내면 충분하다"는 게 당시 쿠베르탱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보수파들로 채워진 IAAF도 이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라진 여자 800m가 올림픽에 다시 선뵌 건 60년 로마 대회에서였다.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여론에 IOC가 32년 만에 밀린 것이다. 32년 LA 대회 때 창 던지기와 원반 던지기를 시작으로 여성 참가를 확대했지만 오래 달리기만큼은 틀어막았던 IOC였다.

이후 여성에 대한 제약은 조금씩 풀렸다. 72년 뮌헨대회 때 1500m가, 84년 LA 대회 때 3000m와 마라톤이 생겼다. 88 서울 대회 땐 1만m가 추가됐다.

가장 장거리인 마라톤을 개방한 건 금녀의 벽이 완전히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보스턴 마라톤 등 일반 마라톤 대회들이 대부분 70년대 들어 여성 참가를 허용했지만 가장 보수적인 올림픽은 제일 늦게 문을 연 것이다. 재미있는 건 여성들에게 마라톤이 봉쇄됐던 시절 남자로 변장을 하고 뛴 여성들의 무용담이 여럿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올림픽 육상에서 여자 금메달 수는 22개다. 남자(24개) 수준에 거의 따라왔다. 하지만 아직도 완전한 평등은 아니다. 3000m 장애물 경주와 50㎞ 경보는 여자 종목이 없다. 남자는 10종경기인 데 반해 여자는 7종경기다. 허들 단거리도 남자는 110m, 여자는 100m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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