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 “아세안서 미얀마 퇴출 논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미얀마 법원은 11일 아웅산 수치(64) 여사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죄를 적용해 징역 3년과 강제 노동형을 선고했다. 형 선고 직후 군사정부 최고지도자인 탄 슈웨 장군은 특별 명령을 내려 형 집행을 유예하는 대신 18개월의 가택연금 명령을 내렸다. 지난 5월 미국인 존 예토가 연금 중인 수치 여사의 집에 잠입했다가 미얀마 당국에 붙잡힌 후 수치 여사는 국가보안법 등의 위반 혐의로 곧바로 기소됐다. 예토는 징역 7년과 강제 노동형을 받았다. 미얀마 군사정부의 이 같은 강경책은 수치 여사의 발목을 다시 붙잡아 탄 슈웨 장군의 정권 장악 이후 20년 만에 처음 시행되는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되고 있다. 수치 여사가 총재로 있는 야당 민족민주연합(NLD) 관계자는 이날 “수치 여사 재연금은 군사독재를 계속하겠다는 의미”라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수치 여사의 가택연금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각국의 미얀마 대사관 앞에선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일본에선 100여 명이 수치 여사의 초상화를 흔들면서 미얀마 대사에게 “공관 밖으로 나와 수치 여사에 대한 가택연금 명령에 대해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시위대는 대부분 미얀마에서 탈출한 난민이었다. 태국·필리핀의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도 시위가 열렸다. 앞서 군사정부는 2006년 수도를 북부 네피도로 옮기고 2007년에는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탄압했다.

◆국제사회 압력 거세질 듯=미국은 이번 주말 짐 웹 상원의원을 미얀마로 보내 군사정부 지도자들과 양국관계 개선 문제 등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수치 여사가 다시 연금됨에 따라 양국 관계 개선은 어려워질 전망이다.

미국 정부는 수치 여사 연금이 계속될 경우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과 논의해 미얀마를 아세안에서 퇴출시키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유엔도 압력을 가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3일 미얀마를 방문해 탄 슈웨 장군과 2시간여 동안 회담하고 수치 여사 석방과 민주화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 때문에 유엔 내에선 미얀마에 대한 인내가 한계에 달했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어 이번 수치 여사 재연금 사태와 관련해 어떤 형태든 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최근 수년 동안 미얀마가 북한과 협력해 핵 개발을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미국은 물론 유엔 차원의 핵 포기 압력도 거세지고 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수치 여사=1964년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해 철학과 정치학·경제학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미국에서 결혼해 생활하다 88년 귀국해 조국 민주화에 투신했다. 그러나 군사정부가 그에 대한 탄압을 계속해 지금까지 14년여 동안 구금 또는 가택 연금 상태에 있었다. 90년에는 그가 구금된 상황에서 실시된 총선에서 485석 중 39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지만 미얀마 군정은 정권 이양을 거부했다. 9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지난달에는 구금상태에서 마하트마 간디 평화상을 받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