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세계가 할 일 우리가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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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지구촌의 영향력 있는 유지 모임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등 서방선진7개국 (G7) 이 '50년만의 국제경제 최악의 위기' 에 빠져 있는 지구촌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뒤늦게나마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얼마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G7뿐 아니라 주요 신흥시장 국가 15개국을 더한 G22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회의를 소집한 바 있고 며칠 전 런던에서는 G7 재무장관들이 몇가지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또한 지난번 워싱턴에서 개최된 국제통화기금 (IMF) 과 세계은행 연차총회에 참석한 일본의 미야자와 기이치 (宮澤喜一) 재무상은 아시아 통화위기 극복을 위해 3백억달러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게다가 미국의 통화당국은 2차에 걸친 금리인하를 단행하고 독일을 위시한 여타 선진국들의 동시 금리인하를 유도한 바 있다.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일임에 분명하다.

지난해 7월초 지구촌 한구석에 위치한 상대적으로 조그마한 나라 태국에서 시작된 환란 (換亂) 이 이웃 인도네시아를 거쳐 한국에까지 전염되고, 그 이후 러시아를 거쳐 브라질과 여타 남미제국에까지 확산돼 세계경제의 거의 3분의2를 휩쓸게 될 것을 내다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아닌가.

심지어 이 환란의 여파가 미국에까지 번져 미국 금융체제 자체를 흔들어 놓을까 우려한 미국 통화당국이 파산지경에 놓인 LTCM이라는 헤지펀드를 긴급 구제하는 일까지 일어나게 되리라는 것은 더더욱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실제 미국 정부는 지난해 8월초 IMF가 주선한 태국을 위한 긴급구제금융에 직접 참여하지 않을 정도로 아시아 금융위기를 '바다 건너 먼 불' 로만 생각했다.

금융시장 관련 이론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분들마저 바로 이 LTCM에 투자했다고 하니 다른 사람들이야 두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 아닌가.

이제 G7은 이번 아시아 금융위기 확산을 보며 소위 '금융의 세계화' 가 가져다 줄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절감하게 된 것 같다.

하루에도 1조5천억달러에 달하는 거래가 이루어지는 국제외환시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무리근성' (herd instinct) 의 갑작스런 발작은 단기성 자금의 유출입을 크게 증폭시켜 특히 금융시장이 취약하고 폭이 좁은 나라에 미칠 수 있는 폐해는 막대할 수밖에 없고, 이 여파는 결국 전 세계로 확산돼 세계경제 전체의 침체와 몰락마저 가져 올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지구촌 유지들의 움직임이 요란스런 말 잔치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특히 G7 정상회담과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될 아태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의에서 좀 더 구체적인 실천방안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아시아 금융위기의 확산을 차단하고 현재 위기에 처한 나라들의 빠른 경제회생을 위해 선진제국의 더욱 과감한 동시 금리인하와 구체적인 수요 진작 정책이 발표되고, 특히 일본 금융개혁의 상당한 진척 결과 발표와 함께 일본이 내놓은 3백억달러의 구체적인 활용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와 동시에 새로운 국제금융 여건에 맞는 신세계 금융관리체제 구축의 청사진도 제시돼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현재 문제되고 있는 헤지펀드의 투명성 제고와 공시제도 강화, 여타 단기자본 유출입에 대한 통제문제, IMF의 운용개선, IMF.국제결제은행 (BIS).세계은행 등 관련 국제기구의 기능조정 및 더욱 긴밀한 협조체제 구축문제 등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제시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구촌 전체가 해야 할 일과 별개로 우리 스스로 할 일들을 더욱 신속하고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은 재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행여나 세계경제 여건의 일시 호전으로 우리의 금융.기업 및 노동시장의 고통스런 구조조정 속도를 늦추게 된다면, 지금까지 우리 국민 모두가 지불한 엄청난 희생이 무위 (無爲) 로 돌아갈 뿐 아니라 앞으로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공일(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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