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동방신기 파문 계기로 연예산업 선진화 서둘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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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동방신기의 전속 계약 분쟁 파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동방신기가 속한 연예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16일로 예정된 소속 가수들의 합동 공연을 연기한다고 발표하면서 비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 공연은 티켓이 발매 동시에 매진될 만큼 국내외 팬들의 지대한 관심을 모았었다고 한다. 비행기를 타고 와 원정 관람을 하려 했던 해외 팬들도 상당수였다는 게 주최 측 설명이다. 연예인과 소속사 간 분쟁이 국내를 넘어 외국 팬들에게까지 손해를 끼치게 됐으니 불미스럽기 이를 데 없다.

동방신기 세 멤버의 주장대로 SM이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했는지, 아니면 SM의 주장처럼 뭔가 다른 속사정이 있는 것인지는 아직 시비가 가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번 사태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한 한국 대중문화 콘텐트와 걸맞지 않은 연예산업의 후진적 하부 구조를 드러냈다는 점은 명백하다. 기획사가 어린 연예인 지망생을 발굴해 데뷔시킨 뒤 각종 계약을 대행하며 사생활에까지 깊숙이 개입하는 현행 구조로는 갈등과 추문이 잇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올 봄 공정거래위원회가 19개 연예기획사 소속 연예인 230명의 전속 계약서를 조사한 결과만 봐도 문제가 심각하다. “자신의 위치를 항상 소속사에 통보해야 한다” “계약 해지 땐 유사한 연예활동을 모두 중단해야 한다” 등 노예계약성 조항이 거의 모든 계약에서 발견된 것이다. 공정위가 이 같은 조항들의 시정과 표준약관의 도입을 권고함으로써 변화의 첫발을 떼긴 했다. 그러나 기획사들이 반발하고 있어 제대로 진행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장자연 사태에 이어 동방신기 파문까지 환부가 드러날 대로 드러난 만큼 언제까지 수술을 미룰 순 없다. 하루 빨리 관련 법과 제도를 갖춰 낙후된 연예산업 시스템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요와 영화, TV 드라마 등 한국 대중문화의 콘텐트는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일 뿐 아니라 해외에서 한국과 한국인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한류의 성공을 이어가기 위해서도 연예산업 선진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