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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차별·금기철폐 또 하나의 역사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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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소니아 소토마요르(55·사진) 미국 연방 대법관 지명자가 6일(현지시간) 상원 인준을 통과했다. 찬성 68, 반대 31표였다. 민주당과 무소속 의원들에다 공화당 의원 9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소토마요르는 미국 연방 대법원 220년 역사상 최초의 히스패닉계 대법관이다. 여성으론 세 번째다. 집권 민주당은 안정 의석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비준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상당수 공화당 의원은 그가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며 반대했다. 미국 역사에서 소토마요르의 경우처럼 인종·성·종교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일은 항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지난해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버락 오마바)을 탄생시켰던 미국 사회는 또다시 ‘건설적 파괴’를 선택했다. 해묵은 편견을 깨고 용광로같이 다양한 가치를 포용해 가려고 노력해 온 역사에 또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이다. 미국의 주요 금기 파괴 역사를 보면….

◆‘검둥이’ 야구선수, 가장 사랑받는 미국인이 되다=1947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브루클린 다저스의 브랜치 리키 단장은 흑인 재키 로빈슨과 선수 계약을 체결했다. 로빈슨은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그 선수가 됐다. 한 해 전 메이저리그 16개 팀 단장 대부분은 흑인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것에 반대했었다. 로빈슨이 경기에 나서자 팀 동료들은 “흑인과 뛰느니 팀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다른 팀 선수들은 “파업을 벌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경기 때마다 상대편 더그아웃에선 “검둥이(nigger), 목화밭으로 돌아가라”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호텔에선 로빈슨의 숙박을 거부하기도 했다. 로빈슨은 이를 참아 내면서 뛰어난 기량으로 보답했다. 그러자 팬들의 관심도 그의 피부색에서 플레이로 바뀌어 갔다. 시즌 후 로빈슨은 신인왕을 차지했다. 그해 말 여론조사에선 로빈슨이 가수 빙 크로스비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이 됐다.

◆이교도 대통령의 탄생=60년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존 F 케네디는 가톨릭을 신봉하는 아일랜드계 이민자였다. 개신교 신자가 대부분인 미국에선 그때까지 가톨릭에 대한 반감이 심했다. 케네디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보수주의의 본산 격인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날아갔다. 그곳 침례교 목사들 앞에 선 케네디는 “나는 가톨릭의 후보가 아니라 가톨릭 신자도 나설 수 있는 민주당 후보”라고 역설했다. 또 “미국민의 4분의 1이 단지 가톨릭을 믿는다는 이유로 2등 시민 취급을 받고 있다”며 평등정신에 호소했다. 케네디는 미국 사회의 주류로 일컬어지는 WASP(백인 앵글로색슨계 개신교도)가 아닌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이후 미국 대선에선 후보의 종교를 문제삼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흑인 노예의 증손자가 연방 대법관이 되다=서굿 마셜은 67년 최초의 흑인 연방 대법관이 됐다. 흑인 민권운동이 이뤄낸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55년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버스 안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사건은 마틴 루서 킹의 흑인 민권운동을 촉발시켰다. 이후 버스에서 흑인과 백인의 자리 구분이 없어졌고(56년), 같은 고교에 다닐 수 있게 됐으며(57년),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문자 해독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됐다(65년). 흑인들의 압도적 지지를 업은 케네디와 린든 존슨 두 대통령은 승승장구하던 변호사 마셜을 연방 순회판사와 법무차관, 대법관에 임명했다. 그는 볼티모어 흑인 노예의 4세손이었다.

◆대법원에 여자 화장실이 생기다=81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샌드라 데이 오코너 애리조나주 항소법원 판사를 연방 대법관 후보로 지명했다. 하지만 법무부에선 오코너가 출산으로 쉰 적이 있고 연방 직책을 맡은 경험도 없다며 부정적이었다. 상원의 공화당 의원들도 “그가 ‘낙태 금지’ 의견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백악관에 압박을 가했다. 오코너는 끝내 낙태 반대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레이건은 오코너 지지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오코너는 그해 9월 인준을 통과했다. ‘대법관 금녀의 벽’은 이렇게 깨졌다. 미국민들은 그해 말까지 6만여 통의 편지를 보내 그를 격려했다. 그는 “대법원에 처음 출근했을 때 여자 화장실이 없었다”고 밝혔다. 현재 연방 대법관 9명 중 2명은 사실상 여성 몫이다.

이충형 기자

◆소니아 소토마요르는 …

▶ 1954년 뉴욕 브롱크스의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민 노동자 가정에서 출생

▶프린스턴대-예일대 로스쿨 졸업

▶주요 경력

-뉴욕 연방지방법원 판사(1992~1998)

-순회 연방항소법원 판사(1998~2009)

-연방대법원 판사(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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