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진전 보인 4자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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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제네바 4자회담이 합의한 2개 분과위 (평화체제구축.긴장완화) 는 회담 시작 11개월만에 비로소 한반도문제를 다루는 본격적인 협상 '틀' 이 갖춰졌다는 의미를 갖는다.

북한이 의제 (議題) 로 주장하는 주한미군문제는 일단 다음 회의로 미뤄진 상태여서 분과위가 내년 1월 중순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될지 불투명하기는 하다.

하지만 북한도 분과위라는 틀을 깨는 데는 상당한 부담을 안아야 하므로 이같은 틀의 성립은 한반도 문제해결의 진일보로 평가될 수 있다.

김정일 (金正日) 체제가 확립된 후 이번에 북한이 전략적이기는 하나 한반도협상에서 모처럼 '선 (先) 구성 후 (後) 의제' 에 합의하는 양보를 보인 것도 눈길을 끈다.

물론 협상의 커튼 뒤에서 북한은 미사일발사, 대규모 지하의혹시설 개발, 대남 침투도발 등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외교적 필요에 의해 북한이 다른 한축으로는 대화의 틀을 유지하겠다고 나선 것은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는 조심스런 해석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4자회담이 분과위 가동 - 핵심문제 논의 - 평화구축.군축이라는 역사적 진보를 이뤄내려면 당사자들은 각자 위치에서 회담성공에 기여해야 한다.

미국으로부터 옥수수원조.경제제재완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북한은 이번 제네바테이블에서도 주로 미국을 상대하려는 협상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남북간에 민간 차원이기는 하나 금강산관광.소떼지원 같은 교류가 진전되고 있고, 한반도 평화문제가 근본적으로 남북간 사안 (事案) 인 만큼 북한은 남한쪽으로 몸을 더 돌려야 한다.

미국도 북한에 이를 계속 주지시켜야 한다.

중국은 이번에 분과위 구성 등 회담성공을 위한 쪽으로 바람직한 노력을 보여주었다.

중국의 일관된 적극성은 북한이 4자회담의 틀속에 머무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정부로서는 4자회담의 활성화를 계속 추진하는 한편 북한이 만들어내는 '긴장조성현안' 에 엄정히 대처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선 북한의 핵관련 지하시설이 영변 말고도 두곳이 더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영변 인근시설에 대해서는 한국과 미국이 아직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있다.

주한미군문제는 한.미 유대와 남한내 안보결속감을 흔들기 위해 북한이 정전 이래 꾸준하게 이용하고 있는 협상무기다.

미사일.화학무기 등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력증강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비록 분과위구성이라는 진전이 있었지만 이 문제를 의제로 다루는 데는 신중한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금강산관광 등 교류의 시대엔 더욱 이런 주의의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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