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찾은 쌍용차 평택 공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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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조원들은 10여 대의 경찰 버스에 말 없이 올라타고 공장 북문으로 나갔다. 경찰은 단순 가담자로 분류된 노조원들을 인근 경찰서로 데려가 신원조회를 한 뒤 훈방 조치했다.

아침만 해도 전운(戰雲)이 걷히지 않았다. 이틀간 경찰의 진압작전이 전개되며 도장공장은 일촉즉발의 위기감에 휩싸였다. 경찰은 “6일 도장2공장을 나온 노조원들은 최대한 선처하겠다”며 사실상 최후통첩을 내렸다. 그러던 오전 11시쯤 노사 간 대화의 물꼬가 다시 트였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먼저 손을 내민 쪽은 노조였다고 사측은 설명했다. 쌍용차 최상진 상무는 “회사가 제시한 협상 최종안에 대해 노조가 전향적인 변화 입장을 밝혀 와 이에 응했다”고 설명했다.

낮 12시에 시작된 최종 담판엔 박영태 쌍용차 법정관리인과 한상균 지부장 둘만이 참석했다. 이때부터 노사 사령탑이 마주 앉은 본관과 도장2공장 사이의 ‘평화구역’이란 컨테이너박스로 이목이 쏠렸다. 평행선을 달리던 노사가 다시 협상 테이블에서 얼굴을 맞대자 ‘극적 타결’에 대한 희망 섞인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후 1시18분 두 협상 대표가 컨테이너박스를 나서는 장면이 목격됐으나 표정은 어두웠다. 공장 안팎의 초조감도 더해졌다.

그리고 20여 분 뒤 ‘정리해고가 큰 틀에서 합의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문에 모여 있던 사측 직원들이며 가족들 사이에선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이어 한 시간 뒤부턴 세부안에 대한 협상이 이어졌다. 결국 노사가 한발씩 양보하면서 잔류 노조원 중 무급 휴직 및 영업직 전환 비율을 48%로 하자는 데 접점이 맞춰졌다.

그동안 노조는 “무급 휴직 등을 통해 정리해고 대상자를 모두 고용하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사측은 “무급 휴직 및 영업직 전환 비율을 40%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며 맞섰다.

오후 2시40분쯤엔 노조원들이 농성을 멈추고 공장 밖으로 나온다는 소식까지 더해졌다. 경찰은 공장 안으로 들어가 적극·단순 가담자를 분류한 뒤 대기 중인 버스에 태워 공장 밖으로 내보냈다. 사제 무기와 최루액이 난무하던 공장 위로 찾아온 77일 만의 ‘평화’였다. 협상 중재단을 결성했던 원유철 한나라당 의원과 송명호 평택시장 등은 타결 소식을 듣고 공장으로 달려와 “앞으로 중재단을 회생지원단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법원에 파산신청 요구서를 제출한 쌍용차 협동회 채권단의 최병훈 사무총장도 “협력업체들도 쌍용차의 조기 정상 가동을 위해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은 노사협정이 타결된 것을 계기로 파산신청을 철회했다. 농성을 해제한 대부분의 노조원은 경찰 조사에 응했지만 강성 노조원 20~30명은 “협상 결과에 수긍할 수 없다”며 도장2공장을 떠나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이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으나 오후 8시30분쯤 이들도 모두 공장 밖으로 나왔다.

경찰은 단순 가담자를 훈방 조치했지만 체포영장이 발부된 집행부 21명을 포함한 적극 가담자 100~150명에 대해선 사법 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상균 노조지부장은 이날 협상 타결을 발표한 뒤 평택경찰서로 자진 출두했다.

경찰 관계자는 “외부세력·집행부·폭력 노조원 등으로 분류해 둔 상태”라며 “노조원들을 일괄적으로 잡아들여 노사 협상 타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판이 나오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다. 고기철 경기경찰청 홍보계장은 “평택·안성서 등 경기경찰청 관내 경찰서에 나눠 조사하면 노조원들 개개인의 가담 정도를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평택=최선욱·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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