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인터넷 시대'의 정부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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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제위기를 당해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온통 금융개혁과 재벌구조조정에 쏠려 있는 듯하고 정부 스스로의 변신노력은 계속 지연되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정보화시대를 맞아 다른 나라들은 발빠르게 행정의 개념과 방식을 바꿔 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그 속도가 느린 점이다.

정부는 대개 국민총생산의 3분의 1을 넘는 공공재를 생산하는 경제주체이며 또 시대의 변화에 선도적으로 적응해야만 하는 부문이다.

이 때문에 잘되는 국가들을 보면 개혁의 불을 정부가 제일 먼저 지피는 것이다.

이는 또한 세상이 변해가는 데 대한 어떤 조직적 대응방식을 정부가 솔선해 보여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는 국경없는 무한 경쟁시대를 맞아 경쟁력 제고야말로 절체절명의 과제가 돼 있으며 어느 나라 정부가 가장 효율적인가에 대한 경쟁이 치열한 실정이다.

정부부문의 정보체계와 정보기술수준의 개혁이 이런 점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다.

정부의 기본기능이라고 볼 수 있는 국방.교육.환경.복지.건강.법무.경찰.행정.각종 인프라.각종 민원사업에 이르기까지 정보화를 통한 원가절감.효율증진.생산성 향상 등 그 과제는 무궁무진하다.

물론 우리 정부도 부처마다 행정전산화 목표를 내걸고 정보화사업에 노력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이른바 제1세대 정보화에 불과하다.

즉 부처별로 독립적 행정전산화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세계 모든 나라들은 제2세대 정보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즉 정부 전체가 하나의 정보망.서비스망으로 운영돼 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컴퓨터를 이용해 주민등록등본을 즉석에서 발급받을 수 있는 것은 제1세대 정보화라고 볼 수 있다.

동사무소의 민원행정이 전산화된 것이다.

그러나 가령 병무청에서 무슨 일을 보다가 주민등록등본이 필요한 경우 현장에서는 이를 발급받을 수 없다는 것은 문제다.

병무청과 동사무소가 네트워킹이 안돼 있기 때문이다.

동사무소까지 가지 않더라도 어느 곳에서든지 컴퓨터만 있으면 주민등록등본을 뗄 수 있을 때 우리 행정은 제2세대 정보화를 이루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제2세대 정부전산화를 이룩하면 여러 가지가 달라진다.

주민등록.자동차 등록.환경개선 체계.소비자보호 업무.실업보험 관련 업무.각종 자격시험.세금의 자진 납부 등 민원업무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이뤄진다.

또한 정부의 모든 정보.법령.규정.지침 등을 언제 어디서라도 일람할 수 있다.

정부행정의 공간적.시간적 장벽이 없어지고 국민의 필요에 의해 모든 체계가 융통성있게 변형되는 것이다.

행정전산화를 통해 공무원의 수효를 크게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민원업무에 따른 각종 비리를 원천적으로 근절할 수 있다.

이미 미국.캐나다.호주.아일랜드.싱가포르 등은 이러한 정부업무의 제2세대 전산화를 거의 완성해 놓은 상태다.

'월드와이드 웹 (WWW)' 이나 '야후!' '키오스크' 등의 연계망이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모델이고 이들을 타국과 연결시켜 전세계적으로 행정의 글로벌화 (제3세대) 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분야가 전자상거래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해 전세계 기업들과 소비자들은 컴퓨터를 통한 상품과 서비스의 국제거래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이는 기업의 구매.물류.생산.유통.마케팅 등의 분야에서 비용을 크게 절감시켜주기 때문에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 결정적 요건이 되는 것이다.

전자상거래가 영향을 미치는 분야가 너무도 넓고 그 위력이 가위 폭발적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이에 대해 어떤 공동의 질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올해 11월에 있을 아태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담에서도 이 전자상거래의 진로에 관해 정식 토론이 있을 예정이다.

당분간 정부가 이에 간섭하는 것보다는 이의 발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표준제시.기술개발.사업주체간 역할조정 등에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이나 최소한 국제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라도 알아내기 위해 새로운 계정방식이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개혁은 시대의 흐름을 감안하면서 빠르게 추진돼야 한다.

정보화야말로 이 시대와 21세기를 성공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정부개혁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IMF위기 극복에 온 정신이 집중돼 이렇게 화급을 요하는 정부의 정보화 개혁이 뒤처지지나 않나 걱정이 없지 않다.

어려운 때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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