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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재테크]14.'금리 더 떨어질테니 국채 사볼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지난주 복부인 복여사의 원금을 되찾아 줄 수 있었던 것은 천운 (天運) 이었다.재택구에겐 '앓던 이가 빠진 듯' 후련한 일이기도 했다.

자칫 잘못됐으면 '남의 돈 까먹는 투자전문가' 소릴 들을 뻔하지 않았던가.

큰 짐을 덜은 만큼 이젠 본격적으로 대업 (大業) 을 시작할 때가 됐다.

재택구가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한국의 조지 소러스' 가 되는 일이었다.

재택구는 우선 증권투자회사 (뮤추얼펀드) 를 하나 차릴 생각이었다.

증권투자회사는 소액투자자를 모아 일정액의 기금 (펀드) 를 조성한 뒤 이를 주식.채권 등에 투자하는 전문투자회사였다.복여사는 이미 3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고금리 영감도 '6개월 동안 연 10%의 수익을 보장해야 한다' 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10억원은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밖에 무모한 씨 등 20여명에게 1억원씩의 투자동의를 얻어낸 터였다.

이만하면 돈 문제는 대충 해결됐고, 문제는 최고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최고의 펀드매니저 (기금운용가) 를 찾는 일이었다.

물론 재택구 본인이 이 역할을 할 것이었지만 자신 말고도 최소 두사람의 전문가가 더 필요했다.

누가 좋을까? 재택구가 골똘히 생각에 빠져있는 찰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재택구씨? 나요 나, 안전형이오. 요즘 이거 금리가 너무 떨어져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오. 수익증권 5천만원짜리 만기가 코앞에 닥쳤는데 도대체 돈을 어디다 굴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

"아, 예. 안녕하셨어요. 저도 그것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마땅한 상품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1년이상 자금을 묻어둔다 생각하고 지금이라도 국채에 투자를 한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국채요? 채권투자는 금리 높을 때 사서 낮을 때 팔아야 하는 것 아니오? 지금 이렇게 금리가 낮아졌는데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금리가 더 떨어질 걸로 봅니다. 최근 실세금리가 연 9%대로 하락했다지만 내년 상반기에는 이게 연 6~7%까지 하락할 수도 있어요. 미국이 금리를 추가로 내린 데다가 유럽 각국도 금리 인하를 검토중입니다. 세계적인 저금리시대 개막이 바야흐로 눈앞에 와 있다는 얘기죠. 게다가 국내 금융기관들은 자기자본비율 (BIS) 맞춘다, 구조조정에 대비한다 해서 돈을 잔뜩 움켜쥐고만 있는 바람에 자금이 넘쳐나고 있어요.

금리가 급락세를 멈추려면 이들 금융기관이 보유중인 돈이 빠져나갈 마땅한 투자나 대출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은행이나 투신사들은 '고위험 가산금리 (리스크 프리미엄)' 를 아무리 높이 물겠다고 해도 기업이나 가계에 투자나 대출을 거의 안해주고 있어요. 심지어는 요즘 은행당 평균 1조원가량이 그냥 금고안에 잠자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은행 입장에선 잘못 투자하거나 빌려줬다가 떼이는 것보다 낫다는 거지요. 때문에 순전히 금융기관 사정으로 금리하락은 당분간 계속될 거란 겁니다. "

"그래 지금 국채에 투자하면 1년뒤 얼마나 받을 수 있습니까?" "국민주택1종의 경우, 수익률이 연 8.3%입니다. 세후 수익률은 7.2%고. " "겨우 그것밖에 안됩니까?" "은행 정기예금 금리도 8%대로 떨어졌고 우량회사채 수익률도 9%인 점을 감안하면 안정성뿐 아니라 수익성 면에서도 괜찮습니다.

세후 수익률은 국채가 더 높거든요. 물론 연초 연 30%대 고금리 금융상품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던 때를 생각하면 투자할 맛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부동산이나 주식보다는 낫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듣자하니 요즘 주식값이 폭등이라는데 증권투자를 해보면 어떻겠소?" "그건 선생님 자신이 결정할 사항입니다. 국내외 여건이 좋아지고 있고 따라서 증시로 돈이 더 몰릴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식투자란 1백사람이 돈을 따도 나만은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고위험 고수익' 상품입니다.

웬만큼 자신이 있거나 확실한 정보가 있기 전까진 삼가하는 게 좋습니다. " "잘들었습니다.좋은 참고가 됐어요. "

"언제든지 궁금한 것 있으면 또 연락주십시오. " 전화를 끊고 난뒤 재택구는 수수해씨를 떠올렸다.

수해씨는 어제, 그동안 주가지수 선물을 사들여 큰 돈을 벌었다고 털어놓았다.지난달 수해씨는 행사가격 36에 선물 10계약을 사들였고 선물가격이 46까지 급등하는 바람에 20여일만에 5천만원이 넘는 이득을 봤다는 것이다.

재택구가 '선물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 라며 말리는 통에 망설였지만 꼭 주가가 오를 것같은 예감이 들어 투자를 안하고 참을 수가 없었다는 게 수해씨의 고백이었다.

무모한 짓이기는 했지만 재택구는 그녀가 천부적인 투자감각을 지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지난번 주가지수 옵션투자때도 그랬지만 수해씨에겐 돈 냄새를 맡는 동물적인 감각이 있었다.

그래, 그녀와 함께 증권투자회사를 꾸려가보자.나의 탁월한 이론과 풍부한 현장경험에다 그녀의 타고난 감각을 합하면 뭔가 큰일을 한번 해내지 않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재택구는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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