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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저출산과 강아지값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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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개를 반려동물이라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뜻일 텐데. 애들이 어렸을 때 치와와랑 17년간 더불어 살아 봤더니 많은 즐거움을 주긴 하더라. 늘 반겨주고 슬픔과 기쁨의 감정교류도 되고. 해가 갈수록 똑똑해지면서 사람 비슷해지더니 결국 바람 부는 날 생명을 다하고 갔다.

더불어 살면서 두고두고 즐거움을 즐기려면 자식만 한 선물이 또 어디 있을까.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살면서 젤 보람 있는 일이 자식을 낳은 일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지금은 아니란다. 애를 잘 낳지 않는다는데, 요즘 애들이 버릇없고 이기적이라고는 하지만 어른들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영리하다. 안 낳는 이유. 반드시 있을 게다. 왜 기피할까. 모 포털 사이트의 ‘출산율 더 떨어져’라는 기사의 댓글을 봤다. 354개였다. 뭔 핑계가 그리도 많을까 읽어보니 알 것도 같다.

엄청난 사교육비가 문제란다. 낳아 놓고 기러기가족이 될까봐 겁도 나고, 열심히 일해 학원비도 못 벌 바에야 시작부터 않겠단다. 애가 커 갈수록 늘어나는 책임감 때문인가 보다. 그래도 엄마 아빠는 되고 싶고 외롭기도 하고, 그래서 강아지라도 키운단다. 남산 산책을 할 때마다 개를 가운데 놓고 “아빠한테 와라, 엄마한테 와라”하는 커플을 쉽게 볼 수 있다. 첨엔 ‘개를 낳는 사람도 있나’ 해서 듣기 거북했지만 부모 같은 책임감을 갖는다면 뭐 그리 나쁘겠나 싶다.

양육도 문제라는데, 굳이 ‘애는 엄마가 키워야’를 고집한다면 출산과 양육을 배려해 주는 가족 친화적인 기업이 많이 늘어나야 될 것이다. 양육을 고려해 근무지와 시간을 탄력적으로 배려해 주는 그런 기업이 실적도 훨씬 좋다는데 그게 ‘윈윈’ 아닌가. 자랑스러운 최첨단 IT 기술 그때 써먹지 뭐하나 싶다.

남편 소득이 오르면 둘째 출산율이 올라가는 반면 부인 소득이 오르면 오히려 낮아진다는 통계가 나왔단다. 부인에겐 월급 올려주는 직장이 둘째 자녀보다 더 매력적인가 보다. 막 인정받기 시작한 직장을, 둘째 애 키우느라고 소홀히 해서 행여 직장을 잃지나 않을까 하는 그 맘. 충분히 이해된다. 육아와 교육의 책임을 고스란히 부인에게 넘기는 한 출산율이 글쎄, 쉽게 올라갈 것 같진 않다. 개 값만 오르지.

그렇다면, 저출산은 부당한 사회시스템에 대한 여자들의 시위인가? 반란인가? 육아에 대해 ‘성의 있는 정책적 배려’가 시급하다. 여성의 행복을 위해 (여행프로젝트) 서울시에서 많은 길을 하이힐이 빠지지 않는 도로로 고쳐 준단다. 하이힐을 신고 멋이라도 부리며 일할 수만 있다면 이미 행복한 거다. 납작 구두 신고서 애 맡길 데가 없어 이리저리 뛰다 넘어지는 경우가 하이힐 굽이 도로에 끼어서 다치는 횟수보다 많을 것 같은데. 그 돈으로, 믿을 만한 질 좋은 보육시설 몇 개 더 만들어 주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사흘 굶은 애 손에 눈깔사탕 쥐여주는 것 같다.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