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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자산가격 오르지만 출구전략은 시기상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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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 4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은 3차 G20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금융위기 진정 이후 출구전략’ 등을 다루기로 논의한 바 있다. 출구전략이란 경제위기 국면에서 동원한 극단적인 재정 확대 및 양적 통화확대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경제를 정상적인 상태로 돌려 놓기 위한 조치를 말한다. 출구전략을 적절히 구사하면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 같은 부작용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출구전략의 시행 자체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절차와 집행의 강도, 특히 집행 시기를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언급한 출구전략 수단을 보면 시중은행의 지급준비율 인상, 보유 채권 매도 등이 있다. 이는 평상시에도 중앙은행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할 때 흔히 사용하는 수단이다. 하지만 이자율에 초점이 맞춰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자율의 상승은 민간의 심리에 영향을 미쳐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 따라서 완전한 경기 회복이 아니라 경기 회복의 징후가 보인다고 금리를 선제적으로 인상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재정지출을 축소하는 문제도 많은 고민이 요구된다. 최근 민간소비의 회복은 조세 환급, 소비보조금 지급, 세율 인하와 같은 재정확대의 결과물이다. 이런 지원 프로그램을 서둘러 철회할 때에는 민간소비에 상당한 충격이 가해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만, 지나친 재정적자는 미래의 소비 여력을 소진시킬 수 있으므로 효율적인 재정 집행이 필요하다.

최대 논란거리는 과연 지금이 출구전략을 시행할 때냐는 점이다. 찬성론자들은 과잉 유동성으로 인해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 물가연동채권(TIPS)은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채권시장에서 10년 국채수익률과 10년 물가연동채권 수익률의 차이는 1.6%P 정도의 인플레이션 율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상당히 높은 마이너스 생산갭(Output Gap)이 존재하고 있다. 생산갭이란 실제 경제성장률과 잠재 경제성장률의 차이를 의미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9년 세계 생산갭은 1980년 이래 가장 낮은 -3.2%로 예상된다. 실업률도 미국 9.5%, 유로지역 9.5%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미국의 소매판매 증가율도 여전히 마이너스권에 머물고 있다. 당장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 않음을 시사하는 대목들이다.

지금 통화정책 방향을 긴축으로 선회하고 재정 확대 기조를 축소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 불안한 부동산 시장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과 같은 규제를 통해 투기를 억제할 수 있다. 지금 경제 상태는 심각한 질병으로 대형 수술을 받고 병실에 누워 회복 과정에 있는 환자에 비유될 수 있다. 섣부른 출구정책은 힘겹게 돌려놓은 경기를 다시 깊은 수렁으로 빠트릴 위험이 있다. 한마디로 시기상조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