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집단지성 시대의 미디어법 파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는 자신을 중간자로 자처했다. 뉴스나 문화를 만드는 자는 따로 있고, 미디어는 만들어진 정보나 문화를 수용자에게 전달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디어는 실제로는 정보나 문화를 상품으로 생산해 수용자에게 판매하며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막강한 이익이나 권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수용자들은 미디어가 판매하는 상품을 사지 않으면 사회생활에 필요한 수단을 갖추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건 허구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였다. 미디어가 판매하는 정보나 문화가 실용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그 믿음이 허구라면, 대중적인 관심사를 모를 때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허구가 아니었다. 어쨌든 수용자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미디어는 갑(甲)이 되고 수용자는 을(乙)이 되었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대중화하면서 미디어 이용의 무게중심은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수용자는 여전히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정보나 문화를 즐겨 소비하지만, 뉴욕대학의 클레이 셔키 교수가 말했듯이 스스로 정보나 문화를 생산하거나 공유하기를 더 즐긴다. 지나간 100년 동안 수용자들이 소비하는 데 자족했다면 이제는 생산과 공유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대중이 수동적인 수용자나 소비자에서 능동적인 생산자나 공유자로 변모한 대표적인 예로 위키피디아의 성공을 들 수 있다. 예전에 백과사전은 당대 최고의 전문가로 필진을 구성해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부어야 출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키피디아는 다수 아마추어와 소수 전문가의 협업을 통해 어느 출판사도 넘보지 못할 생생한 백과사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위키피디아의 끝 모를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위키피디아가 대중을 생산의 협업자로 끌어들여 경쟁력 높은 제품을 생산하는 데 성공한 경우라면, 우리나라 네이버는 여기저기에 산재한 정보나 문화를 수용자가 쉽게 공유하게 함으로써 기업적으로 대성한 예로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네이버는 저널리스트들이 생산한 정보나 문화를 모아 수용자가 쉽게 그것도 무료로 공유하게 함으로써 대중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고, 그런 성공을 통해 가장 실속 있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 철옹성을 구축했다.

네이버와 같은 포털 미디어는 대중매체가 생산한 상품을 모아 대중이 공유하게 하지만, 많은 웹사이트는 내용을 자체 생산할 뿐만 아니라 그럴싸한 내용이 있는 사이트를 찾으면 여기저기에 알리고 퍼 나름으로써 정보나 문화의 대중적 공유를 촉진한다. 대중은 자기들끼리 생산자가 되었다가 소비자가 되고 아울러 전파자가 됨으로써 대중이 갑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경영 석학으로 꼽히는 찰스 리드비터 는 대중으로 하여금 새로운 대중으로 거듭나게 하는 대중의 이런 ‘협업적 창조성(collaborative creativity)’을 집단지성이라고 정의했다.

대중이 미디어의 소비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이자 공유자로 변해 가는데, 전통적인 대중매체가 겸영을 통해 지난 세기와 같은 경영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이 물음에 긍정적인 답을 내놓은 전문가는 보기 어렵다. 앞으로도 수용자는 생산자나 공유자로 더욱 진화할 것이다. 인터넷 역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서 끊임없이 틀을 바꿔갈 것이고, 그 많은 웹과 블로그 등은 새로운 공유방식을 무한대로 확산시킬 것이다. 겸영이라는 단순한 방법으로 이런 거대한 흐름에 맞설 경쟁력을 갖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국회에서 미디어법을 둘러싸고 벌인 소동을 미국 방송은 만화 같다고 촌평했다고 한다. 국회에서 벌어진 활극도 그러려니와, 전통 매체의 겸영이 부와 권력을 낳을 것이라는 가정이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에서 제기되었다는 것 자체가 만화 같은 일이다. 이 파동을 거치며 겸영의 허실을 제대로 따지는 상황이 전개된다면 그나마 다행일지 모른다.

김민환 고려대 교수·언론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