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웟슨도 우즈도, 스탠퍼드에서 명예를 배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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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호 08면

톰 웟슨(왼쪽)과 타이거 우즈가 1996년 6월 오클랜드 힐스에서 열린 US 오픈에서 함께 연습 라운드를 하고 있다. 당시 나이 47세의 웟슨과 21세의 우즈는 스탠퍼드 대학 동문이며, 이때 우즈는 재학 중이었다. 우즈는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프로로 전향했다. ‘대선배’ 웟슨의 설명을 듣는 우즈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게티 이미지]

지난 20일 끝난 브리티시 오픈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노장 톰 웟슨(60).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명문 스탠퍼드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학구파 골퍼다. 그래서 ‘골프 심리학자(Golfing Psychologist)’로도 불렸다. 팔방미인이었던 그가 프로 무대에 뛰어든 것은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1971년. 로스쿨 진학을 진지하게 고려하며 프로 골퍼와 변호사의 갈림길에서 고민했던 그는 결국 골퍼의 길을 선택했다.

미 PGA·LPGA를 키운 건 대학골프

웟슨처럼 미국의 골프 선수 가운데엔 명문대 출신이 적지 않다. 스탠퍼드는 물론 UCLA, USC 등과 애리조나주립대, 조지아대 등 명문 대학을 나온 골퍼가 한두 명이 아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스탠퍼드대 출신이다. 1994년부터 2년간 스탠퍼드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웟슨이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뛰어든 반면 우즈는 2학년을 마치고 프로로 전향한 경우다.

미셸 위는 스탠퍼드 대학에 다니지만 골프 팀 멤버는 아니다. 프로 선수이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세계랭킹 2위 필 미켈슨은 애리조나주립대를 졸업했다. 88년 입학해 92년 졸업할 때까지 골프 명문 애리조나주립대의 골프부를 이끌었다. 세 차례나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챔피언십 개인전에서 우승하며 아마추어 골프계를 평정했다.

원조 골프황제 아널드 파머와 한 시대를 풍미한 커티스 스트레인지는 웨이크 포리스트대 동문이다. 잭 니클라우스는 오하이오주립대 출신이고, 데이비드 듀발은 조지아대를 졸업했다.

정상급 프로들이 미국의 명문 대학을 나온 것은 골프가 NCAA 산하의 정식 스포츠 종목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대학 스포츠 하면 축구와 야구·농구·배구·아이스하키 등을 떠올리지만 미국에선 골프도 인기 있는 대학 스포츠 종목이다. 상당수 대학이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골프 실력이 뛰어난 선수를 장학생으로 뽑는다.
물 흐르는 것처럼 부드러운 스윙으로 유명한 프레드 커플스는 휴스턴대를 나왔고, 앤서니 김과 찰스 하웰3세는 오클라호마주립대 동문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찰스 하웰3세는 99학번이고, 앤서니 김은 2004학번이다. 하웰 3세는 프로 무대에 뛰어들기 앞서 2년간 오클라호마주립대를 다녔다. 앤서니 김은 3학년을 마친 뒤 프로로 전향했다.

박지은·미켈슨도 같은 대학 나와
명문 대학을 나온 것은 남자 선수뿐이 아니다. 여자 프로골퍼들 가운데도 상당수가 명문대 골프팀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은퇴한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그녀의 바통을 물려받은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는 모두 애리조나대 출신이다. 졸업을 하지 않고 2년간 대학을 다닌 뒤 프로 무대에 뛰어든 것도 공통점이다.

한국 선수 가운데엔 박지은이 골프 명문 애리조나주립대 골프부에서 활약했다. 박지은은 1999년 NCAA 챔피언십 여자부 개인전에서 우승하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소렌스탐과 박지은, 오초아 등의 경우에서 보듯 명문 골프 대학들은 실력만 뛰어나다면 외국 선수들도 장학생으로 스카우트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 대학 가운데 골프부를 두고 있는 대학은 100여 곳에 이른다. 그 가운데 전통의 골프 명문으로 꼽히는 대학들은 서부 지역에 많다. 기후가 사철 골프를 즐기기에 적합한 데다 건강과 스포츠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더해진 결과다. 90년대엔 애리조나주립대와 애리조나대가 대학 골프의 최강자로 꼽혔다. 동부에선 듀크와 조지아·플로리다대 정도가 강세였다. 최근엔 USC와 UCLA·스탠퍼드 등 캘리포니아 지역 대학들이 골프 명문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학의 골프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학비가 면제되는 건 물론이고 학교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애리조나주립대를 거쳐 2000년 LPGA 투어에 데뷔한 박지은은 대학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일단 골프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여러 면에서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학교 내 운동시설은 완벽한 수준이고, 가는 곳마다 동문들이 나와 열렬히 환영해 준다. 애리조나주립대의 경우엔 학교 안에 골프 코스가 있었는데 이것만으로도 모자라 애리조나주 전역의 모든 골프장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 최고급 회원제 골프장들도 우리 학교 골프부 학생에겐 문을 활짝 열었다. 99년 NCA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때엔 대부분의 애리조나 지역 일간지 1면에 기사가 실렸다.”

훈련도 매우 강도 높게 이루어진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부터 팀 연습이 시작된다. 우리 학교 골프부는 남자와 여자팀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훈련을 함께 했다. 두 사람씩 편을 짜서 실전 라운드를 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지면 늦게까지 남아 훈련을 더 해야 했다.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실력이 향상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골프 장학생들은 남다른 대접을 받지만 4년 과정을 모두 마치고 졸업장을 받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우즈는 스탠퍼드를 2학년까지 마쳤고, 소렌스탐과 오초아, 박지은 등도 2학년을 마친 뒤 프로 무대로 뛰어들었다. 이에 비해 톰 웟슨과 필 미켈슨, 데이비드 듀발(조지아대) 등은 졸업장을 받아든 뒤 프로에 데뷔한 경우다.

대부분의 선수가 대학 졸업장을 딸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2~3년 만에 프로에 뛰어드는 것은 상금의 유혹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이 되면 실력을 발휘하기에 늦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는 것도 선수들의 프로행을 앞당기는 데 한몫한다.

미셸 위는 프로만 뛰는 대학생
‘1000만 달러의 소녀’란 별명이 따라다니는 미셸 위는 좀 다른 경우다. 스탠퍼드대 2학년에 재학 중인 미셸 위는 골프부 소속이 아니라 일반 학생 신분이다. 동시에 미셸 위는 LPGA 투어의 전 경기 출전권을 가진 프로골퍼다. 그래서 그는 아마추어 대회인 NCAA 챔피언십에는 출전하지 않고 프로 대회에 나간다.

한국에도 골프 장학생 제도가 있다. LPGA 투어로 건너간 신지애와 KLPGA 투어에서 활약 중인 유소연·최혜용 등은 모두 연세대에 재학 중인 ‘대학생’ 프로다. 정재은은 고려대, 서희경과 이보미는 건국대에 재학 중이다. 그렇지만 국내 대학 골프의 사정은 미국과 매우 다르다. 미국의 대학 선수들은 대학 무대에서 주로 뛰는 아마추어 골퍼인데 비해 국내 대학 선수들은 대부분 프로골퍼다. 프로골퍼가 대학에 적만 걸어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테크닉뿐 아니라 매너·리더십도 골프
미국은 골프부 학생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험을 보지 않으면 학점을 받을 수 없다. 박지은은 애리조나주립대 시절 “보통 오전 8~9시부터 수업이 시작되는데 매일 낮 12시까지는 꼭 수업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국내 대학의 경우엔 학사관리가 느슨한 편이다. 미국에서 활약 중인 선수가 국내 대학에서 꼬박꼬박 학점을 받고 있는 건 난센스다.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길 원하는 대학의 입장과 수업엔 안 들어가도 대학 졸업장은 받고 싶어하는 프로골퍼, 양측의 필요성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에서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프로 무대로 직행하는 경우가 느는 추세다. 폴라 크리머와 모건 프레셀 등은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로에 데뷔했다. 그럼에도 미국에선 여전히 프로 데뷔에 앞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권장하는 분위기다. 신사도와 에티켓을 중시하는 골프에선 테크닉만큼 인격과 지성도 중요하다는 뜻에서다. 나이 어린 선수가 일확천금을 노리고 프로 무대에 뛰어드는 것을 좋게 볼 리 없다.

타이거 우즈와 필 미켈슨, 안니카 소렌스탐과 박지은 같은 정상급 선수들은 아마추어 시절 각각 대학의 명예를 걸고 뛰었다. 그래서 미국의 명문 대학들이 PGA와 LPGA 투어의 젖줄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선수들은 프로 무대에 데뷔하기에 앞서 대학 생활을 통해 협동심과 리더십을 배운다. 골프의 엄격한 규칙을 체득하는 한편 예절과 에티켓 등을 익히는 것도 대학 시절이라는 것이다.

박지은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프로에 진출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일반인들은 물론 골프 선수들에게도 학교 생활은 무척 중요하다. 대학에선 단순히 전공 과목의 전문 지식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평생에 한 번뿐인 경험을 하지 못한 채 프로 무대로 뛰어드는 선수들을 보면 안타깝다. 남자 골퍼는 물론 여자 골퍼들의 전성기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아닌가. 골프 선수로서 롱런하려면 프로 전향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NCAA
(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미국대학스포츠협회. 1906년 대학체육연맹으로 설립됐다가 1910년 지금의 NCAA로 조직을 개편했다. 산하에는 축구와 농구·배구·풋볼은 물론 육상과 골프를 관장하는 사무국이 있다. 골프는 디비전 I과 디비전 Ⅱ,Ⅲ 등으로 나뉘는데 스탠퍼드, 애리조나주립대 등 규모가 큰 대학은 주로 디비전 I에 속해 있다. NCAA 내셔널 챔피언십은 해마다 5월 말~6월 초에 열리며 8개 대학팀이 72홀 스트로크 플레이와 매치플레이로 승자를 가린다. 가장 스코어가 좋은 선수에겐 개인상을 준다. 잭 니클라우스는 1961년 NCAA 챔피언이었고, 헤일 어윈은 67년, 타이거 우즈는 96년 우승자다. NCAA 선수권 개인 부문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3승을 거둔 벤 크렌쇼와 필 미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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