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철수에서 투자회수로, 이번엔 유동성 환수로 쓰임새 확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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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호 28면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WSJ)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등에 따르면 출구전략은 군사용어였다. 인명과 장비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작전 지역이나 전장에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베트남전 당시 미 펜타곤(국방부) 내부에서 만들어져 쓰였다. 이게 일반화된 건 영화 ‘블랙호크 다운’의 무대인 소말리아 내전이었다. 미국은 소말리아 군벌들의 양민학살을 막기 위해 1992년 군대를 파견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해 ‘빠져나올 궁리’를 했다. 이때 미 언론들이 펜타곤 관계자들의 말을 빌려 그 궁리를 ‘출구전략’이라고 표현하면서 널리 퍼졌다.

출구전략(Exit Strategy)이란?

이후 출구전략은 경제·경영 용어로도 쓰이기 시작했다. 어떤 회사가 한 사업을 시작했다가 철수하기 위해, 또 어떤 투자자가 한 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가 처분하기 위해 세우는 계획에도 출구전략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때 파는 쪽은 사는 쪽보다 정보 우위(정보비대칭)에 있다. 현재 실적과 미래 전망 등을 사는 쪽보다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한다. 실적이 가장 좋고 경제가 호황일 때 최대 이익을 회수한다. 대표적인 예가 벤처 투자자가 투자한 회사의 주식이 상장될 때 지분을 정리하고 현금화하는 것이다. 사모펀드(PEF)는 출구전략의 귀재로 알려졌다. 어떤 기업을 인수할 때 매각 시점과 희망 가격 등(출구전략)을 미리 정해 놓고 여기에 맞춰 구조조정 등을 단행할 정도다.

올해 들어 출구전략은 중앙은행의 통화환수 정책을 표현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글로벌 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기업어음(CP), 회사채, 모기지 관련 증권 등까지 마구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장에 돈을 공급했다. 국채가 대부분이던 중앙은행 포트폴리오에 새로운 자산들이 들어찼다. 통화량 급증으로 발생할 인플레이션을 막으려면 그렇게 늘어난 자산들을 적절히 처분해야 하는데,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중앙은행도 피해를 보지 않아야 한다. 적절한 타이밍에 자산을 처분해 현금화(유동성 환수)해야 한다는 점에선 중앙은행이 벤처 투자자 등과 처지가 비슷해진 셈이다. 출구전략이란 용어가 중앙은행의 통화환수 전략과 같은 말로 쓰이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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