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門關 수행' 독방서 깨달음과 씨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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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겨우 몸 하나 움직일만한 공간. 움막도 좋고 토굴도 좋다.

선종의 전통이 강한 우리 불가에서는 한때 이보다 더 훌륭한 수행공간이 없었다.

그것도 한번 들어갔다 하면 몇년이고 바깥 세상을 피한다.

아예 출입을 하지 못하게 입구를 막아버리거나 못질을 해버린다.

불교계에서는 이를 쉽게 '무문관 (無門關)' 수행이라고 부른다.

이 무문관 수행 전통이 스님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몇 몇 속인들간에도 새롭게 살아나고 있다.

무문관은 원래 중국 송나라 선승인 무문혜개 (無門慧開)가 지은 책이름. 깨달음의 절대경지를 '무 (無)' 라고 표현하고, 이 무자 (無字) 를 탐구한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도봉산의 천축사에서 '무문관' 이라는 참선수행도량을 세우면서 그런 공간을 일컫는 보통명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불가의 물질주의 때를 벗기려는 것인가.

피나는 마음공부를 통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겠다는 노력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우선 백담사에서 새로 문을 연 무금선원 (無今禪院) . '시간의 흐름이 멈춘 곳' 정도로 풀이되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지난번 하안거 (여름철 수행)에 이 선원에 들어간 수행자는 해제까지 한번도 문을 열지 못했다.

이 선원은 나무숲에 파묻혀 있어 수행하기에는 그저 그만이다.

화장실까지 갖춘 두평정도 방이 12칸. 수행자들은 달랑 몸만 들어간다.

그 뒤로는 의사소통이 필요할 때는 당연히 필담이다.

음식도 문밑으로 밀어넣는다.

세속 기준으로 보면 교도소의 독방보다 더 처절하다.

무금선원에서는 앞으로 6년 수행자도 받을 계획. 이외에 무문관수행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사찰은 공주 계룡산의 대자암과 제주도 한라산 기슭에 자리잡은 남국선원 등 두 곳. 신청자가 많아 2003년까지 꽉 차 있다.

2년전에 문을 연 남국선원의 무문관에서는 현재 7명이 수행중. 수행자의 법랍은 평균 20년 정도이고 이곳에서의 수행기간은 1년. 이 기간에 식사는 오전 11시 30분에 한끼 (밥 4백50g) 이고 오후에 과일이 주어진다.

어떤 수행자는 그것도 부담스러운지 '과일을 넣지 말아 달라' '밥을 1백50그램만 넣어달라' 는 쪽지를 내보낸다고 한다.

대자암의 무문관은 천축사에 무문관을 세웠던 정영스님이 94년에 장기간 참선을 원하는 수행자들을 위헤 마련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지난달에 5개월짜리 수행을 끝내고 새로운 수행자를 맞을 준비에 바쁘다.

지난번 수행에는 비구니와 재가 불자가 각각 1명씩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관문을 돌파해야 해야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갈텐데 그 문은 잘 보이지 않고, 그 문없는 문을 들어가려는 용맹정진이 이들 무문관에서 지금 이순간에도 펼쳐지고 있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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