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박물관 1호 보물 (21) 농업박물관 ‘강진 용소 농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6면

1933년, 무명에 채색, 길이 373㎝,너비 394㎝, 서울시 문화재자료 43호

청룡에 올라탄 신농씨(농업의 신), 잉어와 거북의 표정과 몸짓이 익살맞습니다. 이 독특한 작품은 전남 강진군 군동면 용소부락 안지마을에서 사용하던 두레 농기입니다.

옛 농촌에선 모내기·물대기·김매기·벼베기·타작 등 씨 뿌려 거둘 때까지 농사의 전 과정이 두레라는 공동작업으로 이뤄졌습니다. 두레패는 농기 아래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쉬고, 함께 먹었습니다. 농기는 농민들의 소망을 하늘에 이어주는 농신기(農神旗)이기도 했습니다. 물의 신이자 비의 신인 청룡·잉어·거북 등을 그린 까닭입니다.

『삼국사기』에 “큰 가뭄이 들어 저자를 옮기고 용을 그려놓고 빌었다”(진평왕 50년·628년)고 기록될 만큼 농기의 전통은 유서 깊습니다. 말 탄 양반도 그 앞에선 내려 걸어가야 할 정도로 절대 권위를 지녔던 농기. 마을의 위세를 나타내는 만큼 장정 넷이서 잡아야 할 정도로 거대하게 제작됐습니다. ‘강진 용소 농기’는 가로 세로 약 4m의 정방형입니다. 직사각형으로 긴 폭이 4m 가량인 여느 농기에 비하자면 그 크기가 압도적이고 형태도 독특합니다.

일제 치하에서도 위세가 꺾이지 않던 농기는 기계화·산업화로 두레가 소멸되면서 함께 쇠퇴했습니다. 왕실이나 양반 문화가 아닌, 서민들의 것이기에 더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사라져갔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몇 점 남지 않은 옛 농기 중 ‘강진 용소 농기’를 포함해 3점이 올 초 서울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됐습니다.

이경희 기자

◆농업박물관(agrimuseum.or.kr)=농협중앙회에서 1987년 서울 충정로 1가 75번지에 설립했다. 옛 농기구 2000여 점을 전시하고 옛 농촌 풍경을 재현해놨다. 여름방학(7월 21일 ~ 8월 23일) 기간 중 무휴. 김매기 체험, 팜스테이 등 초등학생 대상 방학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무료입장. 02-2080-5727~8.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