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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연쇄살인의 고리 끊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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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근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드러나는 희대의 잔혹한 연쇄 살인사건은 엽기살인범을 그린 영화 '양들의 침묵'을 볼 때처럼 놀라움과 섬뜩함, 두려움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번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대 연쇄 살인사건인 그린리버 사건의 판박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이혼경력에 특정 계층이나 여성에 대한 막연한 증오가 동기 아닌 동기가 되고 있고, 겉은 신사이나 안은 살인마이며, 경찰이 초동수사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피해가 확산된 뒤 범인과의 거래 및 자백에 의존해 수사를 전개하는 과정 등에서 비슷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사건을 더욱 충격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렇듯 우리 사회가 현대 서구사회의 깊어가는 병리현상의 여러 단면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가진 자를 무조건 증오하는 식의 계층갈등이 이토록 심화됐는가? 정신적 가치를 숭상하던 전통적 선비정신은 어디 가고 배금주의와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가?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남의 생명마저 손쉽게 해치는 도덕과 양심의 마비가 은연중 만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탄 섞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결국 이 끔찍한 사건의 뿌리는 불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할 때, 그와 같은 범죄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키려면 우리가 전통적 가치관으로 재무장하고 사회구성원들이 소외된 약자에 대한 포용의 따뜻한 손길로 연대감을 회복해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가 한가지 덧붙여 강조하고 싶은 것은 범죄를 거듭하는 상습누범자 중에는 처벌보다 정신치료가 더 시급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검찰이 이 사건을 송치받아 조사 중이므로 성급한 판단을 하기 어렵지만, 피의자는 편모슬하의 불우한 소년시절을 보내고 거듭된 교도소 수감에서 오는 좌절과 단절감으로 성격이 극도로 비틀렸으며, 충동적으로 타인을 공격하면서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무책임한 행동을 지속하는 이른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정신병 질환자는 일반적으로 지능에 결함이 없고, 말도 제법 합리적으로 하며 신경증적 증상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환각과 망상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는 정신분열병 등과 구분되며, 정상과 정신병 중간 정도로 평가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편벽한 성격, 자기 행동에 대한 제어능력의 부족으로 주기적.반복적으로 반사회적 행동을 저지르기 때문에 그들의 개선에 특수한 사회치료처분 등 새로운 형사정책이 필요한 대상이다.

또한 피의자에게 간질 병력이 있으나, 사실 간질은 정신병이라기보다 신경계 질환으로 측두엽 간질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범죄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만 간질로 인하여 뇌손상이 초래돼 인격 장애를 일으키거나 간질과 함께 다른 정신장애가 병발될 수 있기 때문에 면밀한 정신감정을 필요로 한다.

정신장애에도 여러 유형과 단계가 있고 이에 따른 형사책임이 각기 다르지만 정신장애가 있는 자에 대해 치료개념을 폭넓게 도입하지 않으면 교정시설은 그들을 잠정적으로 격리하는 장소일 뿐 재범 악순환의 고리를 효율적으로 끊을 수 없게 된다.

정신분열병 등 전형적 정신장애 범죄자를 수용.치료하는 공주치료감호소의 운영을 더욱 내실화하는 한편, 국립정신감정기관을 설치해야 한다. 또 현재 빈약한 수준인 일반 교도소 의무실을 유엔이 채택한 피구금자 처우기준에 맞춰 의료센터 수준으로 대폭 보강하며 정신과 전문의도 배치하고, 위험한 인격장애인 등에 대해 선진적 사회치료방법을 폭넓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그들을 재활.갱생시키는 것이 사회를 위협하는 이른바 '공공의 적'으로부터 우리의 안전을 지켜나가는 또 다른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김진환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