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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열풍, 기획력 부족이 막장 드라마 양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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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최근 우리 안방 극장을 점령한 ‘막장’ 드라마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방송개혁시민연대·자유기업원·문화미래포럼 등이 공동 주최한 ‘TV 드라마의 위기와 발전방향’ 토론회가 2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막장’ 드라마의 대표 예로 꼽힌 MBC TV ‘트리플’의 한 장면. 미성년자인 이복여동생과 유부남인 오빠와의 키스 등이 지적받았다. [TV 화면 촬영]


이날 토론회에서 학계·방송계 드라마 전문가들은 “요즘 TV 드라마의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인 경향은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불륜과 패륜 등이 난무하는 막장 드라마를 퇴출시켜야 신뢰 받는 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시청률 지상주의가 부추겨”=토론회 첫 발제자로 나선 최상식 중앙대 미디어공연학부 교수는 “우리 드라마의 한류 열풍이 시청률 지상주의를 부추겼고 결국 억지 설정과 선정적 장면 등이 넘쳐나는 막가는 드라마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BS에서 드라마 PD로 일했던 최 교수는 1971년 ‘여로’의 조연출로 시작해 2002년 ‘겨울연가’ 기획까지 31년간 드라마 제작 현장에 있었다. 그는 막장 드라마가 양산되고 있는 원인으로 ▶한류 스타들의 몸값이 오른 데 따른 드라마 제작비의 상승▶소수의 한류 스타에 대한 지나친 의존▶한국 드라마만의 가족주의 경향 후퇴▶한류 이후 시청률 지상주의 심화▶한류 열풍에 기댄 소재의 다양성 상실 등 다섯 가지를 꼽았다.

최 교수는 “드라마는 사회 윤리나 도덕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므로 오락성과 계도성을 적절히 조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MBC PD 출신인 오명환 용인송담대 방송영상학부 교수도 주제 발표에서 “막장 드라마는 결국 기획력 부족과 창의력 빈약에서 비롯된 일종의 매너리즘”이라며 “인간에 대한 애정 결핍증 나아가선 인생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결핍된 결과”라고 비판했다. 오 교수는 막장 드라마 홍수에 대한 해법으로 ▶방송계의 자발적인 ‘그린(green) 드라마’ 캠페인▶드라마 강령 제정▶드라마에 대한 소비자 감시 운동 활성화 등을 제안했다.

◆“공영 방송의 막장 드라마가 문제”=토론자로 나선 손정은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부이사장은 MBC 드라마 ‘트리플’을 예로 들며 막장 드라마의 실태를 꼬집었다. 그는 ‘트리플’에서 미성년자인 이복 여동생 하루(민효린)가 유부남인 오빠 활이(이정재)에게 키스를 하는 장면을 제시하며 ”이런 적나라한 장면이 안방에까지 나가는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중헌 서울예대 부총장은 “케이블이나 위성 채널의 드라마라면 (표현의 자유를) 훨씬 넓게 생각해줘야 하지만 문제는 지상파 방송의 막장 드라마”라며 “공영도 아닌 공영방송이 공영 행세를 하면서 돈벌이가 잘 되는 드라마의 수위를 높이다 보니 막장이란 소리까지 듣게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드라마 제작 현실 감안해야”=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다소 온도차가 있었다.

최지영 KBS 드라마 책임 PD는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사랑하고 본다는 건 직접 드러낼 수 없는 걸 드라마가 대신 해주기 때문”이라며 “(막장 드라마 열풍을 보며) 우리가 (현실에서) 막장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PD는 또 “한국 사회는 갈등을 다루는 데 있어 너무 터부시하는 측면이 있다”며 “(드라마 소재에 대한) 관용도를 높이지 않으면 드라마의 다양성은 허물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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