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위대한 식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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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재무(1958~ ) '위대한 식사' 전문

산그늘 두꺼워지고 흙 묻은 연장들

허청에 함부로 널브러지고

마당가 매캐한 모깃불 피어오르는

다 늦은 저녁 멍석 위 둥근 밥상

식구들 말없는, 분주한 수저질

뜨거운 우렁된장 속으로 겁없이

뛰어드는 밤새 울음,

물김치 속으로 비계처럼 둥둥

별 몇 점 떠 있고 냉수 사발 속으로

아, 새까맣게 몰려오는 풀벌레 울음

베어문 풋고추의 독한,

까닭 모를 설움으로

능선처럼 불룩해진 배

트림 몇 번으로 꺼뜨리며 사립 나서면

태지봉 옆구리를 헉헉,

숨이 가쁜 듯 비틀대는

농주에 취한 달의 거친 숨소리

아, 그날의 위대했던 반찬들이여



마당을 잃어버리면서 모깃불 피워놓고 멍석 위에서 밥 먹던 시간도 잃어버렸다. 별과 달, 날벌레와 새들의 울음소리가 가난한 밥상의 반찬들이었으니, 그야말로 우주적 식사를 하고 살았던 셈이다. 하늘이 두루 잘 비치는 이 둥근 밥상 앞에서 우리의 배도 능선처럼 불러오고는 했는데, 그 마주 앉았던 얼굴들 다 어디로 갔나.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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