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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8월 그리고 50년]오늘의 시각-대중문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한국 대중의 정서는 희망 (해방) 과 절망 (분단) 이 교차하는 혼돈 속에 있었다.

'가거라 삼팔선' 의 애끓는 망향의식과 '럭키 서울' 의 명랑한 낙관론은 그 혼돈의 양 극단을 반영한다.

대중문화의 생산력을 악극단과 유성기.이동 천막극장으로 대표되는 50년 전의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밑바탕에 흐르는 대중들의 정서는 이처럼 양 극단을 부단히 오가며 흘러왔다.

산업화와 함께 본격 대중문화 시대가 열린 이래 대중문화를 규정한 가장 중요한 논리는 정치적인 것이었다.

개발독재의 막강한 정치논리는 대중의 가장 일상적인 삶의 양식과 의식.정서마저 철저히 재단하고 통제하려 했다.

그 와중에 방송.상영.판매.출판 등 다방면에서 숱한 '금지의 문화' 가 양산됐다.

또 '검열' 의 촘촘한 그물망은 대중문화가 마땅히 가져야 할 창조적 실험정신과 다양성마저 억압해 왔다.

이같은 억압의 벽은 민주주의와 사회적 진보를 추구하는 대중적 저항력에 의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치적 규제가 물러난 자리에는 대중의 진정한 목소리가 아닌 자본과 경제의 논리가 차지하게 됐다.

상업주의.시장논리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대중문화는 이데올로기적 교화.조작의 수단보다 글로벌 시대의 높은 부가가치 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또 정치적 억압의 사슬에서 다소나마 벗어난 대중의 정서는 빠르게 쾌락주의와 소비주의로 달려갔다.

산업화 초기만 해도 도회지 중산층의 성인문화를 주류로 했던 대중문화는 차츰 연령층과 수용집단을 확대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세대간.집단간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장이 되기도 했다.

70년대의 청년문화.80년대의 민중문화.90년대의 신세대 문화는 대중문화 영역에서 드러난 세대간 갈등.문화적 가치갈등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가 된다.

대중문화를 움직이는 힘이 경제논리로 바뀌면서 대중문화를 담당하는 사람들과 그 영역 자체에 대한 인식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지금의 대중문화 주역들은 '딴따라' 라는 비아냥거림을 감수해야 했던 과거 대중 예술인들과 달리 모든 사람들로부터 '스타' 대접을 받으며 높은 수입과 인기가 보장되는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다수 청소년들에게 연예계는 과거 고등고시가 그랬던 것처럼 일거에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로 인식된다.

이런 현상은 대중문화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계급구조가 어느정도 안정화 단계에 이르면서 연예.스포츠 등 대중문화 영역이 기존의 계급질서를 뛰어넘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되고 있다는 사실과도 깊이 연관된다.

지난 50년간 한국사회가 이룩한 압축 성장의 폐해와 모순은 대중문화 영역에서도 예외없이 나타나고 있다.

거품경제 속에서 한껏 부풀려진 문화시장은 대중을 끝없는 소비의 노예로 만들어갈 뿐 창조적 주체로서 대중의 잠재력은 여전히 억압된 채로 남아 있다.

압축적 산업화의 결과이자 파탄이라 할 수 있는 국제통화기금 (IMF) 위기는 그나마의 문화 소비마저 위축시키고 있고 그 결과 문화산업 전반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논리를 통해 생산력 수준을 다시 IMF 이전으로 환원시키겠다는 식의 경제주의는 아무런 해결책도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문화가 상품이기 이전에 대중의 삶 자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아울러 정치논리와 경제논리의 득세 속에 억압돼 온 대중들의 잠재적 창조성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金昌南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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