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가스관 독립’ 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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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유럽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나부코(Nabucco) 가스관’ 프로젝트가 본궤도에 올랐다. 터키·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 5개국 대표가 13일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이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정부 간 협정에 서명했다고 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나부코는 카스피해 지역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 유럽으로 직접 공급하기 위해 서방이 추진해온 프로젝트다. 카스피해 연안에서 출발해 터키와 불가리아를 지나 오스트리아까지 3300㎞에 걸쳐 건설된다.

총 건설비는 79억 유로(약 14조4000억원)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관련국 정부 간 협정 체결로 현재 10억 유로 수준에 머물고 있는 사업비 모금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나부코 가스관이 본격 가동되면 유럽 가스 소비량의 약 5%를 충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유럽의 러시아 가스의존도는 25%에 달한다. 나부코 프로젝트에 대항하기 위해 흑해 해저를 지나는 ‘남부 스트림(South Stream) 가스관’ 건설을 밀어붙여온 러시아는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탄력 받은 나부코 프로젝트=유럽연합(EU)과 나부코 참가국 대표들이 가스관 건설에 처음 합의한 것은 2007년이었다.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 무기화에 맞서기 위해 러시아를 우회하는 가스 공급로를 확보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유럽국가들은 거의 매년 반복되는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 조치에 맞설 대책이 시급했다. 그러나 ‘가스 실크로드’ 구상으로 불린 나부코 프로젝트는 참가국 간 이해관계와 가스 공급원 확보 문제로 지지부진했다. 당장 연 310억㎥의 수송 능력을 갖출 파이프라인을 채울 만한 가스 확보가 문제였다.

카스피해 연안국인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 등이 주요 공급원으로 거론됐지만, 옛 소련권 국가인 이들은 러시아 눈치를 보며 주저했다. 그러다 오래 저울질하던 아제르바이잔이 남부 스트림과 나부코에 모두 가스를 공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물꼬가 트였다. 우즈베키스탄도 프로젝트 참여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지난주 자국 생산 가스 대부분을 러시아에 수출해온 투르크메니스탄이 나부코 참여 의사를 밝힘으로써 프로젝트가 힘을 받게 됐다.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함메도프 투르크 대통령은 10일 “가스 판매망 다변화를 위해 나부코 프로젝트에 참여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나부코를 통해 수송되는 가스의 15%를 자국 소비용으로 가져가겠다고 고집하던 터키도 한발 물러서 협정에 서명하겠다고 나섰다. 프로젝트 참가국들은 2014년 가스관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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