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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지금 감정싸움 벌이고 있을 땐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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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여야가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상황은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간의 충돌로 확대됐다. 노 대통령은 측근을 통해 "유신헌법으로 고시 공부한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는 박 대표의 비난에 대한 반격이다.

지도부가 이 모양이니 그 아래는 볼 것도 없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은 헌법을 지키지 않고 있으며, 유신의 파트너"라고 공격한다. 열린우리당은 "박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는 정수장학회는 사유재산을 강탈한 장물장학회"라고 받아친다. 인신공격들도 서슴지 않는다.

이전투구에 골병드는 피해자는 국민이다. 불황은 끝이 안 보인다. 청년실업은 계속 늘고 있다. 세금은 덜 걷히는 데 신용불량자와 극빈층 문제는 나날이 심각해져 간다. 입만 열면 민생을 책임지겠다던 정치권은 오히려 상대의 과거와 색깔을 물고 늘어지며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게 국회 개원 때 여야가 약속했던 상생의 정치인지 한숨이 나온다.

이대로 가면 종말은 뻔하다. 이미 남미와 아시아의 몇 나라가 보여준 선례가 있다. 따라서 정치권은 서로의 치부를 들추며 자신들의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대신 국민통합적.미래지향적 사안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 그 방법이 실사구시적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최근 보도된 청와대의 자체 분석은 참고할 만하다. 기사에 따르면 바닥으로 떨어진 대통령 지지도는 "경제위기 아니다" 발언, 김선일씨 피살, 의문사위 활동과 수도 이전 논란 등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비교적 정확한 진단으로 보인다. 북한 인권, 북방한계선(NLL) 침범 파문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면 처방도 쉽게 나올 수 있다. 청와대는 꼬이고 있는 일들을 밀어붙이는 데 집착하기보다 폭넓은 의견을 듣거나 개선방안을 찾는 쪽으로 노력하라. 때론 되돌리는 결단도 검토해야 한다. 이 경우 야당이 정체성 시비를 걸 근거가 없어진다. 무엇보다 대통령과 여당이 변하는 것을 국민이 보면 등을 돌렸던 민심이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