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심리학 찍고 ‘월가의 전설들’ 육성까지 들어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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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호 26면

올 2월 개봉한 영화 ‘작전’은 1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제목처럼 주식시장에서 벌어지는 ‘작전’을 소재로 했다. 주인공 강현수(박용하 분)는 주식 매매를 전업으로 하는 개미 투자자다. 영화 속에서 그가 주식 세계에 빠져들게 된 것은 길거리에서 발견한 책 한 권 때문이다(영화 말미 그 책을 쓴 사람은 수퍼개미로 등장한 ‘마산창투’임이 밝혀진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레토릭이 아닌 셈이다. 투자의 세계에서는 그렇다. 어떤 책을 읽느냐가 투자 스타일을 말해 준다. 책 좀 읽어 볼까 싶은데 막막하다. 너무 많다. 그래서 ‘달인’에게 물었다. 시장 분석 전문가인 증권사 리서치 센터장 23명과 운용사에서 펀드를 굴리는 최고투자책임자(CIO) 및 사실상 CIO 역할을 맡고 있는 사장 등 13명에게 휴가철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받았다. 추천서는 경제·경영·투자·재테크 등 분야를 대상으로 했다.

휴가철 증권업계 족집게들이 골라준 ‘투자 고수되는 책’

마음을 읽으면 투자에서 승리
23인 22색 추천이었다. 2명만 같은 책을 골랐을 뿐 나머지 리서치 센터장들은 서로 다른 책을 꼽았다. 유일하게 복수 추천을 받은 책은 『화폐전쟁』. 올 상반기 경제·경영서 베스트셀러 3위(교보문고 기준)에 올랐다. 미국에서 금융 전문가로 활동했던 쑹훙빈 중국 환구경제연구원장의 저서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측해 화제가 됐다. 세계 경제의 역사와 금융시장의 미래를 다뤘다. HMC투자증권 이종우 센터장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중앙은행과 이들이 통화 발행권을 갖는 과정에 얽힌 논쟁과 음모를 다룬 책”이라며 “휴가철 흥미진진하게 세계 경제의 역사를 탐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보증권 김승익 센터장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총성 없는 전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해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의도에서 20년 넘게 짬밥을 먹은 센터장들은 전통 투자 이론보다는 심리 분석 쪽의 책에 관심이 많았다. 지난해 100년에 한번 올까 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전통 경제 이론들이 무용지물이 돼버린 경험도 한몫했다. 키움증권의 박연채 센터장은 『행동 경제학』을 추천 도서로 골랐다. 행동 경제학은 인간은 언제나 이성적이라는 주류 경제학의 한계에 대한 반발로 태어났다. 인간은 합리적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반대로 비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박 센터장은 “기존 경제학에서 풀지 못했던 경제와 인간 심리를 연결하는 행동 경제학의 초보 입문서”라며 이 책을 추천했다.

SK증권 오상훈 센터장은 『사람의 마음을 읽으면 주식투자가 즐겁다』를 골랐다. 오 센터장은 “경제와 재무 이론을 아무리 잘 알아도 주식 투자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이론과 실제 투자 행태가 다르기 때문”이라며 “심리를 파악해 투자 실패를 줄이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외 “일반 투자자들이 범하기 쉬운 심리적 실수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트레이드 박병문 센터장)이라며 『역발상 투자』가, “감정적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한화증권 정영훈 센터장)며 『야성적 충동』이 추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글로벌 위기 이후를 전망하는 책에도 추천이 잇따랐다. 굿모닝신한증권 문기훈 센터장은 『뉴 골든 에이지』를 꼽았다. 소련 공산주의의 몰락을 예견한 저자 라비 바트라는 2010년 이후 혼란과 위기의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경제 부흥의 시대, 대중의 부와 행복을 중시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낙관한다. 하나대투증권 김영익 센터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가 중국·인도 중심으로 바뀌는 거대한 조류를 짚어냈다”며 『흔들리는 세계의 축』을 읽을 만한 책으로 지목했다.
고전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푸르덴셜투자증권 우영무 센터장은 ‘가치 투자자의 아버지’이자 워런 버핏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이 쓴 『현명한 투자자』를, 대신증권 구희진 센터장은 ‘월가의 전설’인 존 템플턴 경의 투자 철학을 서술한 『존 템플턴의 영혼이 있는 투자』를 추천 도서로 꼽았다.
 
전설적 펀드매니저의 지혜를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었을까. 펀드 운용을 맡은 CIO들은 전설적 펀드 매니저가 쓴 책을 복수 추천했다.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의 오성식 주식운용본부장과 하이자산운용 송이진 본부장은 『존 템플턴의 가치 투자 전략』을 꼽았다. 성공한 헤지펀드 매니저이기도 한 템플턴의 증손녀 로런 템플턴이 존 템플턴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투자 원칙을 밝힌 책이다. 저가 매수, 분산 투자, 장기 투자가 템플턴의 핵심 투자 철학이다. 오 본부장은 “올바른 투자 원칙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요즘 읽고 있는 책”이라며 “비관론이 극에 달할 때 투자하라는 그의 투자 금언이 어떻게 실제 투자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밸류자산운용 이채원 부사장은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을 꼽았다. 피터 린치는 1977~90년까지 13년 동안 펀드를 운용하면서 단 한 해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지 않은 투자의 귀재다. 주식시장의 부침과 관계 없이 철저한 기업 분석을 통해 저평가된 종목을 찾아내는 방식이 이 부사장의 가치투자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 그가 닮고 싶은 인물로 꼽은 펀드매니저이기도 하다. 이 부사장은 “전설적인 펀드매니저의 생생한 육성이 담긴 동시에 읽기 쉽다”는 것을 책의 장점으로 꼽았다.

투자 이론의 대가들의 책도 추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투신운용 강신우 부사장은 『투자의 미래』를 추천했다. 저자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제러미 시겔 교수는 세계적인 장기 투자 이론가다. 그는 1802년부터 2006년까지 200여 년 동안의 증시 데이터를 수집해 주식이야말로 어떤 투자처보다 안전하면서 수익률이 높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강 부사장은 “어떤 사업이 실제로 돈을 얼마나 버는지를 토대로 적정한 가격을 산출해 투자해야 실패하지 않는다는 불변의 원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며 “최근 신성장 사업에 ‘묻지마 투자’ 식으로 접근하는 자세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월가의 거장’으로 불리는 경제학자이자 금융 저술가인 피터 L 번스타인은 두 명의 CIO로부터 ‘러브 콜’을 받았다. 삼성투신운용 양정원 본부장은 “리스크를 잘 모르면서 무시하고 과욕을 부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잘 기술한 금융교과서”라며 『리스크』를, 슈로더투신운용 장득수 본부장은 “금융·투자 이론이 어떻게 발전돼 왔는지와 학자들에 관한 에피소드 등 다양한 이야기가 쉽게 나와 있다”며 『투자 아이디어』를 추천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구재상 사장은 『아웃 라이어』를 골랐다. 구 사장은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0년 동안 1만 시간 이상을 연습해야 한다”며 “나는 왜 천재로 태어나지 못했을까라며 자책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허필석 사장은 딱딱해 보이는 경제학을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괴짜 경제학』을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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