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기아와 싸우는 그들①] "오렌지 트럭 쫓아 뛰던 6살 차에 치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관련사진

photo

월간중앙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가장 보편적 고민 중 하나는 바로 비만, 즉 살과 전쟁이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먹는 것과의 싸움(먹지 않기 위한 싸움)과 먹고 살 빼기의 싸움을 반복한다.

스와질랜드 강도욱 월드비전 국제구호팀 간사

하지만 우리가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 것은 불과 20~30년 사이의 일이다. 불과 반 세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역시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금의 장년층은 만성적 기아와 싸우며 성장했다.

지금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오렌지 한 개’ 때문에 죽어가는 어린이가 있다. 그리고 이들을 삶과 죽음의 경계선 상에서 한 명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지구상 최빈국을 찾아 기아와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스와질랜드 강도욱 월드비전 국제구호팀 간사

“5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마을에 오렌지를 가득 실은 트럭이 한 대 지나가자 여섯 살 정도 된 어린아이가 그 오렌지가 너무 먹고 싶었던지 트럭을 쫓아 뛰다 그만 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다음날 월드비전 현지 직원과 함께 그 아이의 집을 방문했는데, 저보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젊은 엄마가 저를 붙잡고 하염없이 우는 거예요. 울면서 한참을 이야기하는데, 현지 직원의 통역에 따르면 ‘죽은 내 아이를 한 번이라도 배불리 먹였던 적이 있다면 이렇게 슬프지는 않을 텐데…’라고 하더래요.”

6월1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월드비전 사무실에서 만난 강도욱(28) 월드비전 국제구호팀 간사의 말이다. 그는 월드비전 스와질랜드 마들람감시피 지역 식수위생사업 진행을 위해 2월21일부터 6월1일까지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스와질랜드와 레소토를 다녀왔다.

스와질랜드는 모잠비크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국경을 마주하는 남아프리카의 소국. 산악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해 ‘아프리카의 스위스’로 불리는 나라다.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비교적 비옥한 토지와 온난한 기후, 풍부한 광물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는 6년째 계속된 심각한 가뭄으로 주식인 밀 농사가 완전 초토화됐다.

이로 인해 인구의 70%가 세계식량계획(WFP)이 구호의 기준으로 삼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극빈자로 전락했다. 뿐만 아니라 스와질랜드는 전체 인구의 33.4%가 HIV 또는 AIDS 보균자인 에이즈대국이기도 하다. 월드비전은 WFP와 합작으로 마들람감시피 지역에서 식량구호 및 식수위생사업을 펼치고 있다.

“WFP는 물론 월드비전도 원칙적으로는 ‘Food for Work’라고 해서 노동을 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식량을 배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런데 마들랑카시피 지역은 인구 대부분이 에이즈 환자로 노동이 불가능한 사람들이었어요. 하는 수 없이 5인 가족 기준의 식량을 한 달 단위로 무상배급하죠.”

강 간사는 식량 배급이 제대로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들람감시피 지역의 한 가정을 방문했던 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남자아이 둘이 일용직 아버지와 사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여섯 살 난 작은아이가 제대로 걷지 못하는 거예요. 물어보니 어려서 다리에 작은 상처가 났는데 제때 치료하지 못해 걷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죠. 그 아이는 태어나 한 번도 병원에 가 본 적이 없었어요. 스와질랜드에서는 환자가 의사를 만나는데, 즉 병원에 ‘입장’하는 비용만 30달러입니다. 치료비와 약값은 별도고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정에서는 아이가 죽을 만큼 아파도 병원에 데려갈 수 없죠.”

월드비전이 이 지역에서 식량구호와 함께 가장 시급한 문제로 선정해 펼치는 사업이 바로 우물을 파고, 재래식 화장실을 짓는 식수위생사업이다.“우리에게는 먹을 물과 배설물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염소가 물을 먹는 웅덩이의 물을 아이들이 그대로 마십니다. 심지어 소가 변을 보는 바로 옆에서 그 물을 마시기도 해요.”

강 간사는 당연히 그런 물을 마셔도 되는 것으로 아는 아이들을 볼 때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오염된 물로 인해 콜레라 등 수인성 질병에 감염돼 죽어가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기아와 질병이 너무 흔해 죽음마저 평범한 일이 돼버린 곳이죠.”그는 구호현장에 나가면 힘든 것은 열악한 날씨도, 가족이나 친구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외로움도 아니라고 했다.

정작 가장 힘든 일은 구호팀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모두 굶어 죽어가는 현장에서 우선순위를 매겨 배급표를 나눠주는 것, 배급에서 제외된 사람들에게 객관적이지만 비정한 이유를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하는 것, 이 모든 것을 신이 아닌 인간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 강 간사는 “그 현실이 가장 잔인하고 힘들다”고 말한다.

글 오효림 월간중앙 기자 [hyolim@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관련기사]

▶ "오렌지 트럭 쫓아 뛰던 6살 차에 치여…" 젊은엄마 절규
▶ "말라리아 주사 엉덩이에 놔서 하반신불구"
▶ 이젠 후원자들도 "또? 또 도와야해?" 그럴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