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기아와 싸우는 그들③] 이젠 후원자들도 "또? 또 도와야해?" 그럴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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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정지선 월드비전 국제구호팀 간사

방글라데시 정지선 월드비전 국제구호팀 간사

월간중앙 2007년 11월18일 방글라데시를 강타한 초강력 사이클론 ‘시드르’는 사망자 3,100명, 실종자 1,000여 명에 수백만 명의 이재민을 낳으며 방글라데시 남부 일대를 ‘죽음의 계곡’으로 만들었다. 정지선(29) 월드비전 국제구호팀 간사가 그 참상의 현장을 방문한 것은 사이클론이 쓸고 간 지 한 달여가 지난 뒤였다.

“제가 방문했던 방글라데시의 모렐간지 지역과 반다리야 지역은 긴급구호(RED) 상태였습니다. 월드비전 현지 직원들은 사이클론이 휩쓸고 지나간 바로 다음날 투입돼 긴급구호를 시작했고, 저는 한 달 정도 시간이 흐른 뒤 한국의 지원으로 재건복구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현지에 도착했죠. 그런데 그때까지도 뿌리째 뽑힌 나무가 거리에 뒹굴고, 이재민들은 여전히 구호단체가 지급한 천막집에서 살고 있더라고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는 전체 국민의 약 83%가 하루 2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국민의 80%가 하루 세 끼를 못 먹는 상태인 셈이다. 이런 국가에 초강력 자연재해가 닥쳤을 때 상황은 ‘속수무책’ 그대로다. 부자나라 사람들은 제방에 둑도 쌓고 비바람에 날아가지 않을 튼튼한 집도 짓고 살지만, 방글라데시 주민들의 움막 같은 집은 조금 센 태풍만 닥쳐도 전체가 그대로 날아가기 때문이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세계각국의 구호단체가 식량과 텐트 등 긴급구호물자를 갖고 달려온다. 문제는 긴급구호는 말 그대로 한두 달 동안 한시적으로 이뤄지는 활동이라는 데 있다. 자연재해로 하루아침에 집과 일터를 잃은 사람들이 한 달 만에 자생능력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월드비전이 긴급구호와 함께 재건복구사업에 힘을 쏟는 이유다.“현장조사를 위해 사이클론이 쓸고 지나간 마을의 한 가정을 방문했을 때였어요. 저보다도 어린 엄마가 아이 두 명을 데리고 있었죠. 남편은 소작농이었는데, 사이클론 때 실종돼 생사도 모르는 상태였죠. 지금은 월드비전의 구호식량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우는데 할 말이 없었죠. 이슬람 국가인 방글라데시에서는 여성이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거든요.”

긴급구호뿐 아니라 재건복구사업을 진행하는 구호단체들이 가장 맥 빠지는 일은 이 모든 일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느껴질 때다.“저의 작은 노력이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는 정말 뿌듯하죠. 하지만 수백만 명의 이재민 가운데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소수거든요. 그럴 때는 차라리 한국에 가서 돈을 많이 벌어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계속되는 자연재해와 이로 인한 계속되는 긴급구호활동으로 인해 후원자들의 후원피로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만 해도 지난해와 올 봄에 또 사이클론이 강타했고, 그에 따른 긴급구호물자가 필요했죠. 하지만 매년 재해가 발생하다 보니 이제는 후원자들도 ‘또? 또 도와야 해?’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당장의 식량이나 식수사업으로는 미시적 변화밖에 가져오지 못하는데, 그럴 때 무력감을 느끼죠.”

정 간사는 “문제는 기후변화”라고 말한다. 벵골만 지역이 과거부터 매년 사이클론이 발생하는 지역인 것은 맞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강도가 더 세졌을 뿐 아니라 예전보다 더 예측 불가능하게 발생해 주민들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지역의 기아문제가 나아지기는커녕 매년 더 심각해지는 이유다.

“한번 자연재해가 쓸고 가면 식량 자급률이 확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지역사회의 식량가격이 급등하죠. 가난한 사람들은 갈수록 국제기구의 식량원조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되죠.”

그는 “전쟁으로 인한 기아와 빈곤도 문제지만, 최근 아시아와 중동지역에서 발생하는 기아는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는 또 “사람들이 기아 사태라고 하면 아프리카의 삐쩍 마른 아이들만 생각하는데, 아프리카 못지않게 아시아와 중동의 기아문제도 심각하다는 것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한 사람의 고통을 위로할 수 있다면 우리는 헛되이 산 것이 아니다. 아무리 못나고 모자란 사람이라도,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존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구상 60억 명의 인구 중에서 12억 명의 인구가 하루 1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살아간다. 이들 중 대부분은 가뭄과 전쟁, 빈곤의 희생자들이다.

이들에게 삶은 말 그대로 잔인한 현실이다. 죽음이 너무 흔해 죽음과 싸울 생각조차 못 해보고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기아와 죽음이 피할 수 있는 고통이라는 것조차 모른 채 말이다. 그래서 이들을 돕는 이들은 한결같이 “그 체념이 더 슬프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실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들에게 최소한 더 나은 삶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그들 스스로 기아와 죽음과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알려주는 것이 이들이 그곳에서 이루고자 하는 공통된 꿈이었다.

글 오효림 월간중앙 기자 [hy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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