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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말 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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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운 BSM 대표가 외승을 나온 승마 애호가들과 포즈를 취했다.

월간중앙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세계 전문가들 제주의 말 보더니 감탄 … “수출하시죠” #국내 최초로 국제지구력 승마대회 유치 … 제주 태우고 달릴 ‘미래형 산업’

서명운 BSM 대표가 처음 제주도에 내려와 자신의 사업계획을 발표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의 결심은 흔들림이 없었다.

“말이 됩니다. 말이 제주를 바꿀 것입니다.”

낯선 타지에 내려와 마(馬)산업을 일으켜 보겠다고 나선 이 사업가, 도대체 무슨 아이디어이기에 이토록 자신만만할까? 서 대표가 설립한 BSM은 국내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승마스포츠 마케팅·컨설팅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제주도 최초로 지구력승마대회를 개최했다.

200여 명의 선수가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나뉘어 까끄래기오름을 중심으로 교래관광지구 인근 20km를 달린 행사였다. 그러나 “이 대회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서 대표의 말이다. 올해에는 국내 최초로 국제승마연맹이 공인한 국제지구력승마대회를 유치했다. 11월까지 4개월에 걸쳐 네 번의 예선 경기를 치른 후 11월에는 본선을 열게 된다.

이 대회를 제주로 가져오기 위해 서 대표는 심포지엄을 진행하고 세계승마연맹의 전문가들을 초빙해 제주도 사람들에게 승마산업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제시했다.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다는 본인의 말마따나 하나 하나가 쉽지 않은 난관을 돌파하는 과정이었다.

그가 처음 승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삼성전자 홍보팀 근무 시절 때다. 삼성전자는 1988년 국내 최초 아마추어 실업승마단을 만들었는데, 서 대표도 창단을 준비하던 멤버였다.

“당시 국제승마협회가 세계적으로 치르는 승마대회에 삼성이 타이틀 스폰서로 나섰는데, 관련 업무를 제가 맡았습니다. 승마문화와 트렌드, 경기 내용, 마필 훈련법 등 말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느라 제가 안 다녀본 나라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승마라는 콘텐츠를 어떻게 수익산업화해야 하는지 길이 보이더군요.”

노하우가 생긴 서 대표는 한국의 실정으로 눈을 돌렸다. 기마민족이니, 주몽의 후예니 하는 것은 말뿐만은 아니었다. 조선시대 무과 급제 시험에도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과목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이 시험을 치르다 다리가 부러져 버드나무 가지로 묶고 다시 도전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역사성이 있어도 자원이 없으면 모두 헛일. 그는 제주도로 눈을 돌렸다. “승마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마필이잖아요? 한국사람이 가장 편안하고 쉽게 탈 수 있는 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에 제주산마(산마)를 보게 된 거죠. 그동안 제주도에서는 제주마(조랑말) 귀한 것만 알고 제주마와 서러브레드종의 혼혈인 산마는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어요.”

20년 전부터 제주도에서는 제주마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외국말 품종과 교배해 제주산마를 만들었다. 말에 20년이면 4대가 넘는 세대가 지나온 것으로,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잡종 특유의 불완전한 품종이 이제는 제법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3m짜리 칸막이에서 키우는 육지의 말과 목초지에서 마음껏 달리는 산마가 비교되겠습니까? 이렇게 방목해 키우는 곳이 또 있는데, 바로 중동입니다. 그곳 말은 키가 145~147cm정도인데 산마의 키가 보통 140~145cm예요. 두 말 모두 신체조건이 비슷하고 지구력이 강해 마라톤에 유리하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이거다!’ 싶었죠.”

그때부터 서 대표 혼자만의 싸움이 시작됐다. 말 생산 농가를 찾아 다니고, 도청 관계자들을 만나 승마지구력대회에 관해 설명했지만 귀를 기울여 듣는 이는 많지 않았다. ‘실력행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국제승마연맹의 인맥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다.

“지구력승마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안 윌리엄스가 세계 최고의 말 전문가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2만 마리의 말이 섬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점 자체를 신기해 하더군요. 직접 제주산마를 보여주니 한참 들여다보고 나서 ‘나와 사업이나 합시다’ 그러더군요. 마라톤을 뛰기 딱 적합한 녀석이니 중동과 유럽에 수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후 6개월 동안 국제승마연맹 관계자들을 초빙해 심포지엄을 열고 캠페인을 벌였다. 승마나 경주용으로 잘 키워내면 말도 충분한 수입원이 되는 성장산업이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지난 2월에는 제주도 대표단을 이끌고 두바이로 날아가 국제승마연맹 회장직을 맡고 있는 두바이 왕비 하야 빈트 알 후세인을 만났다. 그는 여기서 2016년 세계지구력승마선수권대회 유치 신청서를 내고 돌아왔다.

국내 최초로 승마 마케팅에 도전

처음에 승마산업에 관한 컨설팅만 생각했던 서 대표는 결심을 고쳐 아예 제주에 눌러앉았다. 직접 목장을 만들어 좋은 산마를 고르고, 말똥을 치워가며 승마용으로 조련했다. 선례가 없으니 직접 가능성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주의 승용마가 300만~400만 원 선에 팔리는데 잘 훈련하고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면 3,000만~4,000만 원이 되고, 우승한 말은 10억 원에도 팔립니다. 엄청난 부가가치 아닙니까? 고기로나 쓰던 말도 키우기 나름이라는 거죠.” 사업을 하겠다고 섬에 내려와 말을 키우는 이 사람.

이야기를 들을수록 더 궁금해졌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팔겠다는 것일까? “BSM은 마케팅 회사입니다. 광고·홍보·전시·이벤트 등의 장르를 총망라하죠. 가장 큰 자산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승마 마케팅의 지분을 획득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승마에 관한 노하우가 우리나라에서 워낙 부족하다 보니 제가 컨설팅까지 하고 있습니다. 저의 지식과 인맥, 노하우가 사업을 현실화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거죠.”

지구력승마를 비롯한 각종 국제대회를 제주에 유치하면 대회 중계권을 비롯해 광고와 스폰서십이 따라온다. 현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서 대표에게는 미래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다.

그의 계획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승마대회를 개최하며 만든 코스를 활용해 승마 트레킹 상품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아카데미와 고급 승마 클럽까지 만들 계획이다. 제주말의 매력에 빠져 일생일대의 사업을 벌인 서 대표. 그의 꿈과 비전이 제주의 미래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미소 기자 smile8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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