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규제개혁 왜 머뭇거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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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의 각종 규제개혁작업이 겉돌고 있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총규제 7천9백59건중 올해중에 '50%정비' 를 지시했었다.

그러나 17개 중앙부처가 올해중 폐지 또는 완화하겠다고 방침을 확정지은 규제개혁 건수는 전체의 44.1%에 그쳤다.

그나마 지난 상반기중 규제정비 실적은 이 목표의 16.2%에 불과했다.

7개 부처는 그 실적이 10%에도 못미쳤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해 온 규제개혁이 왜 이토록 관료집단들에 의해 겉돌고 있는가.

가장 큰 이유는 관료집단의 비협조적 자세에 있다.

아직도 규제에 안주 (安住) 하는 타성을 버리지 못한 채 많은 관료들이 복지부동 내지 '밥그릇 지키기' 에 연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규제는 접어두고 형식적이고 지엽적인 규제완화로 건수를 채우려 든다.

내용면에서도 '폐지' 보다는 '완화' 가 훨씬 많았고 이권개입의 소지가 큰 인허가 관련 규제개혁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최고통치권자의 거듭된 질타에도 아랑곳없이 주요 역점시책이 관료집단에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관료집단에 의한 규제개혁은 스스로 한계가 있다는 비관론도 이쯤 되면 무리는 아니다.

상반기중의 부진한 실적은 대내외적으로 정부의 불신을 사기에도 족하다.

말끝마다 시장경제원리 운운하면서 정부부터가 시장원리를 가로막는 제도개혁에 이토록 인색할 수가 있는가.

정부의 규제는 필요할 때가 있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규제는 절대 필요하다.

그러나 이권으로 관료들이 시장에 개입하는 규제는 이제 철폐돼야 한다.

규제개혁은 우리에게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규제는 '완화' 가 아니라 '혁파' 돼야 하며 구조조정에 앞서거나 최소한 맞물려야 구조조정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지난 상반기중 정부가 경제위기극복을 위해 여러가지 혁신적인 조치들을 내놓았지만 준비부족과 부처간 협조가 잘 안돼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 정부 자체의 심사평가 결과다.

부실은행 등 금융구조개혁과 부실기업정리.재벌 빅딜 등 기업구조조정은 정부가 '부적절하게 대처한 대표적 사례' 로 꼽히고 있다.

구조조정은 그 주체가 본질적으로 기업이고 시장원리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시장원리를 가로막는 제도적 장치와 걸림돌을 제거해 구조조정이 원만히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각종 규제를 그대로 두고 밀어붙인다고 구조조정이 되지는 않는다.

정부는 이같은 선후 (先後) 관계를 제대로 인식, 지금부터라도 규제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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