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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 칼럼

WTO 제네바협상 성공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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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은 27일(현지시간)부터 사흘간 스위스 제네바에 모여 농업과 공산품 및 서비스 분야의 국제교역을 어떻게 개선할까 논의한다. 이 회담은 지난해 9월 멕시코 칸쿤 WTO 각료회담의 실패 후 쇠퇴하던 도하 라운드 협상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2년 넘게 지속될 지루한 협상의 서막일 뿐이다. 교역을 왜곡하는 보조금을 줄이고 무역장벽을 낮추는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WTO 협상이 재개된 만큼 비중 있는 교역국들은 성의있는 자세로 공론의 장에 나와야 한다. 자국의 제조업과 농민을 해외 경쟁자들로부터 보호하려는 현행 정책을 근본부터 바꿀 각오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주요 교역국의 일원인 한국도 응분의 몫을 해야 한다. 최빈국들만 WTO 개혁안의 예외로 인정될 것이다.

초미의 관심은 농업이다. 농산물 교역장벽을 대폭 낮추겠다는 약속 없이는 다른 분야 협상에 나서려 하지 않는 나라가 많다. 그런가 하면 칸쿤 회담 때 한국 등 일부 국가가 내건 '싱가포르 의제' 세가지(투자.경쟁 정책.정부 조달)를 회원국들이 주요 의제로 삼지 말자는 분위기다. 물론 통관절차 개선 같은 '교역 간편화' 조치에 관한 협상은 시작될 전망이다.

요컨대 농업 분야에서 WTO가 원하는 바는 이렇다. 수출 보조금을 없애고, 가격과 생산량을 왜곡하는 정부의 농업 관련 지원제도를 줄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관세를 내리고 물량 쿼터를 늘려 교역기회를 확대하자는 요청도 포함된다.

'민감 품목'은 이번 개혁 논의에서도 대체로 제외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 우루과이 라운드에 비해선 인심이 그다지 후하지 않을 듯싶다. 가령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쇠고기와 낙농제품.설탕에 대한 자국민 보호를 지금보다 훨씬 줄여야 할 것이다. 일본.한국 같은 나라는 외국산 쌀.쇠고기에 대해 좀더 관대해져야 할 것이다.

공산품 분야에선 2015년까지 무관세화하자는 미국의 제안(개도국에 대한 예외조치는 있겠지만)이 가장 바람직해 보인다. 이게 아니라면 WTO 회원국들은 지난해 칸쿤 회담의 의제를 다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회원국들은 섹터별로 관세를 없애는 데 합의할 공산은 있다.

서비스 분야는 도하 라운드 이전부터 WTO 차원의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진전이 없었다. 실제로 자국의 통일된 의견조차 내지 못한 나라가 많다. 따라서 서비스 논의가 이번 회담의 걸림돌이 되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필자의 견해가 너무 낙관적일 수 있다. 제네바 회담이 칸쿤 회담처럼 결렬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 그럴 경우 도하 라운드 해결은 내년 이후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워싱턴(미국)과 브뤼셀(EU) 정부가 새로운 교역팀을 구성해 약 150개국이나 되는 나라의 다자 간 협상을 주도적으로 재개할 때까지 짧아도 한해는 소요될 테니 말이다.

이번 협상이 깨지면 세계 교역기회를 상실한다는 것 이상의 비용을 초래할 것이다. 우선 지역주의로의 이행이 가속화할 것이다. 칸쿤 회담의 실패 이후 특히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수십 개의 지역 국가 간 교역 협상이 활성화했다. 이런 협상들이 WTO의 다자 간 개혁 논의와 더불어 추진되지 않으면 교역의 다변화하는 추세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무역마찰도 더 심해질 게 뻔하다.

가장 큰 문제는 WTO의 권위가 빛이 바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칸쿤의 '대실패' 이후 현행 자유무역 체제가 여전히 최선일까 하는 의문이 세계 곳곳에서 일었다.

도하 라운드는 난관은 있지만 줄곧 추진될 것이다.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이 논의가 지속될 향후 2년간 힘든 시기를 맞겠지만 마땅히 할 개선작업들을 위한 계획을 짤 때가 아닌가 싶다.

제프리 J 쇼트 미 국제경제연구소(IIE) 선임 연구위원
정리=홍승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