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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또 환란 해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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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끝없는 지뢰밭에 빠져든 부상병 - . 안팎으로 상처받고 있는 아시아 경제의 모습이다.

위기 방지를 위해 완강하게 버텨왔던 말레이시아가 지난 주말 신용등급 하향 조정의 쇼크로 비틀거리고 있다.

한때 안정세를 보였던 엔화가치도 약세로 돌아서고 있다.

위안 (元) 화 평가절하가 걸려 있는 중국.홍콩 경제는 여전히 경계 대상이다. 아시아 경제를 위협하는 새로운 변수들을 짚어본다.

*** 말레이시아 신용하향 평가

◇ 말레이시아 = 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 및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 는 지난 주말 말레이시아의 국가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S&P는 27일에도 말레이시아의 국영 기업과 주요 은행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낮추었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 재무부는 20억달러의 채권을 해외에서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려던 계획을 무기 연기하는 등 후유증이 심각해지고 있다.

콸라룸푸르 증시의 주가지수는 28일 오전 아시아 위기가 촉발된 지난해 7월 이후 최저치인 399.77을 기록했다.

국가 신용도와 같은 신용등급을 가진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나스의 20년 만기 채권유통수익률과 미 재무부 채권 유통수익률 간의 차이인 가산금리는 종전 2.5~3%포인트에서 최근 4.5%포인트로 급등했다.

그만큼 외화를 조달하기가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미 달러에 대한 링깃화 (貨) 의 가치는 최근 1년간 39% (97년 7월 1일 2.524→지난 7월 27일 4.145) 폭락했다.

말레이시아는 올해 13년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할 것으로 내다보인다.

경영난으로 부실 기업이 양산됨에 따라 금융기관의 불량채권이 급증하고 있는 것도 크게 우려되는 대목이다.

다행히 외채 규모는 지난해 말 현재 4백52억달러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국가 신인도가 계속 떨어질 경우 신규 자금 조달과 외국인 투자 유치가 어려워져 자력으로 버티기 힘들게 될 가능성이 크다.

*** 일본 엔화 불안한 행보

참의원 선거 뒤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자민당 총재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면서 도쿄 (東京) 금융시장에서는 불안한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27일 엔화가치는 달러당 1백42엔대로 미끄러지고 닛케이 평균주가도 한달 만에 16, 000엔대가 무너졌다.

28일에는 반등 국면이 나타났으나 일본 경제가 과연 침체 국면에서 벗어날지 어느 누구도 자신하기 힘든 현실이다.

자민당내 요직 인선 과정에서 파벌들의 야합과 나눠먹기가 여전하고 경제재건의 구원투수로 기대되는 차기 대장상에 가지야마 세이로쿠 (梶山靜六).미야자와 기이치 (宮澤喜一) 전 총리.가토 고이치 (加藤紘一) 전 간사장 등이 모두 입각을 거절함에 따라 시장의 반응은 싸늘해지고 있다.

또 무디스가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의 하향 조정을 검토하고 말레이시아 경제가 흔들리는 것도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S&P는 최근 '일본 경제가 더 가라앉는다면…' 이라는 가상 시나리오에서 "일본 정부가 부실 은행들을 과감하게 처리하지 않을 경우 올해 성장률은 마이너스 2.7%로 떨어질 것" 이라고 예상했다.

또 일본의 대형 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하고 엔화가치는 달러당 2백엔 이상으로 급락할 것이란 최악의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 잠재적 위기 요인들

중국은 올 상반기 성장률이 9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7%에 그친데다 내수 및 수출 경기의 침체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신용 경색이 심화돼 기업 도산도 늘어나고 있다.

일부 국영기업과 지방정부에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위안화 평가절하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홍콩 경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실업률이 15년만에 최악의 수준인 7%대로 치솟고 연초 5~6%를 자신했던 성장률도 하반기 수정 전망에선 마이너스로 바뀔 전망이다.

자산 디플레와 함께 홍콩 경제의 중심축이었던 건설.관광.금융.서비스 분야가 모두 죽을 쑤고 있다.

환투기 세력의 홍콩달러 공격도 간헐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다 국제통화기금 (IMF) 의 금융지원이 결정된 러시아에 이어 베트남.멕시코.크로아티아 등도 '위기 도미노' 의 새로운 희생양이 되고 있다.

러시아는 재정적자 탈피를 골자로 한 개혁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해 모든 경제지표가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 미국·유럽 불안 조짐

미 경제는 지난해 3.7%에 이어 지난 1분기중 5.4%의 경이적인 국내총생산 (GDP) 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경제조사기관들은 2분기 성장률을 마이너스 1.5~1%에 그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너럴 모터스 (GM) 파업.기업 재고 감소 등의 요인이 있기는 하지만 무역적자 급증.실업률 재상승 등으로 인해 미 경제의 순항에 제동이 걸렸다는데 대해 별다른 이견은 없다.

6년째 호황을 누려온 영국은 5월중 제조업 생산이 전달보다 0.4% 감소했으며 올해 기업 수익이 15%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독일의 성장률도 2분기에 낮아질 조짐이다.

이탈리아는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0.1%를 기록하면서 빨간불이 켜졌다.

성장률은 당초 예상치 (2.5%)에 못미치는 1.9%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김현기.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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