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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일간 아프리카 돌아, 다시 닿은 곳은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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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김영희 PD는 아프리카 여행기를 담은 저서 『헉hug! 아프리카』의 제목을 직접 지었다. 그는 “‘헉’이란 말엔 아프리카 대륙이 주는 놀라움과 그런 놀라움조차 모두 끌어안는다(hug)는 뜻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김태성 기자]

'바람에 대한 바람'은 여행자의 숙명이다. 바람이 부는대로 몸도 따라가고 싶은 바람에서 여행이 시작된다. ‘쌀집 아저씨’란 별명으로 친숙한 MBC 김영희(49) PD도 그런 바람에서 짐을 꾸렸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그러니까 2004년 봄의 일이었다.

당시 김영희씨는 ‘느낌표’란 프로그램으로 PD로선 맨 꼭대기에 올라 있었다. 그런 그가 잘 나가던 프로그램을 접고 불쑥 떠나기로 결심한다. 목적지는 아프리카. ‘칭찬합시다' ‘책을 읽읍시다’ 등 공익과 예능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히트시키면서 ‘스타 PD’로 우뚝 섰을 때였다. 시청자는 즐거워했지만 정작 그는 아이디어가 점점 고갈돼 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70일간 아프리카 대륙을 종횡한 건 그런 스스로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어서였다. 그가 아프리카를 떠돌면서 기록했던 글과 그림이 5년 만에 『헉hug! 아프리카』(교보문고)란 제목으로 묶였다. 책 곳곳에서 펄떡이는 아프리카의 생명력이 전해온다. 그런데 왜 하필 아프리카였을까.

◇"통통 튀는 생명력"=“떠나기로 작정하자 아프리카가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10년 전쯤 한 지인이 아프리카에 가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색의 향연’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때부터 아프리카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생겼던 것 같아요.”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그를 압도했던 것도 ‘색’이었다. 비행기 좌석을 가득 채운 흑인들에 대해 그는 ‘블랙! 처음 보는 오리지널 까망!’이라고 적었다. 동부 아프리카 최대의 슬럼인 ‘키베라’의 풍경도 그의 눈엔 ‘녹슨 양철 지붕의 물결, 붉은 철판의 모자이크’로 읽혔다.

책에선 색에 대한 묘사만큼이나 수준급인 그의 그림 실력도 확인할 수 있다. 틈 날때마다 그렸던 스케치가 책장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일기를 쓰듯 작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짧은 기록을 남겼죠. 내 아이들에게 보여주려 볼펜으로 꾹꾹 눌러가며 그렸던 그림이 책을 엮는 데 가장 큰 밑천이 됐어요.”

그는 케냐ㆍ우간다ㆍ탄자니아 등 10여개 국을 돌아봤다. 사전 지식이 부족했던 탓에 나미비아에선 비자 발급이 안 돼 타고 왔던 비행기를 다시 타고 돌아간 일도 있었다. 빈곤한 아프리카인들과 성가신 흥정을 벌어야 하는 일도 숱했다. 그런 고생을 견뎌가며 아득바득 아프리카 땅을 밟았던 건 왜일까. “지하철에서도 거리에서도 우린 늘 풀이 죽은 표정이잖아요. 하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은 달라요. 가난해도 통통 튀는 생명력이 느껴지거든요.”

◇"다시, 사람에게로"=김PD는 인터뷰 내내 아프리카의 풍경보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풀어놨다. 하긴 ‘인간 사랑’이 연출의 기본이라고 믿는 그다. 그러니 무덥고 척박한 아프리카 땅에서도 ‘인간’이 또렷이 눈에 들어올 수밖에. 그의 아프리카 체험기는 차마 삶의 굴레를 벗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무언가를 그리워한다는 걸 그리워하는 존재인 것 같아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신선한 자극을 그리워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지난 1년 간 한국PD연합회 회장으로 일했던 김영희씨는 현업 PD로 복귀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담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아프리카로, 예능국장으로, 연합회 회장으로 긴 여행길을 돌아온 끝에 다시 닿은 곳이 사람이다. 그는 책에서 "곤경에 빠진 삶을 지나치지 않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썼다. 이 책의 인세와 수익금은 전액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는 데 쓰인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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