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 1분 1초, 모든 순간이 삶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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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선~의외로 뜨거운 여자야!”(남희석) “아뇨! 저는 홀라당 탄 여자인 걸요~”(이지선) 본래 ‘샬랄라 공주’로 불렸던 밝은 성격 때문일까? 그런 이지선은 사고 직후 10여 차례 대수술을 거칠 때, 안면근육이 성치 못해 두 눈이 온전히 감기지 않았다. ‘뜬 눈으로 잠자는’ 고통을 그때 경험했다. 입원실에 날아든 날벌레도 큰일이다. 하필 눈동자 위에 내려앉으면 두 손은 물론 눈동자조차 깜짝거리지 못하니 혼자서 진저리를 쳐야 했다.

때문에 그 책은 우리가 지금 내쉬는 숨 한 번, 물 한 모금까지 기적의 선물임을 일깨워주는 늠름한 희망 보고서다. 지난 토요일 중앙일보에 소개된 루게릭병의 박승일씨의 경우도 그렇다. 그는 투병과정을 담은 『희망을 전하는 거인』을 펴냈지만, 닮은꼴 책이 한 권 더 있다. 3년 전 선보인 『원더풀』, 역시 루게릭 환자였던 스웨덴 여성 울라 카린 린드크비스트의 기록인데, 그녀는 잘 나가던 방송앵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세포가 퇴화되기 시작했고 끝내 목소리를 잃는다.

박씨와 똑같은 목 근육 퇴화 과정 때문인데, 방송인에게는 너무나 잔인했다. 『원더풀』은 죽기 전 1년 동안의 기록이다. 투병 초기에 커피를 입가에 흘리지 않고 마실 수가 없었다. “왜 이런 병이!”하고 몸부림도 쳐봤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아직도 남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여자”인데, 남편 도움으로 용변을 보면서 눈물도 흘리지만 푸념·감상의 흔적은 없다. 주어진 삶과 운명을 오케이하는 태도야말로 영웅적이다. 뭉클한 것은 뒷부분, 박씨처럼 ‘루게릭, 눈으로 써서’ 전해주는 진한 삶의 메시지다.

“세상을 떠난 그날도 울라 카린은 할 말이 남아 있었다. 딸이 알파벳 글자판을 들어 보이면서 엄마의 깜박이는 눈동자를 주시했다. ‘Y-O-U’라는 말로 시작됐다. 이어지는 말이 ‘W-O-N-D-E-R-F-U-L’이었다. 숨을 거두던 한 여인이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였다.”(260쪽 요약) 책 표지는 이런 글로 장식돼 있는데, 그건 멀쩡한 우리들이 지금 이 순간을 ‘영원한 현재’처럼 살라는 주문이다. “1분 1초, 모든 순간이 삶이다.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위대한 선물!”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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