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야망? 움직여야 “생존” 최태원 회장의 또 다른 카드는…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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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수출 38조7,000억 원’.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SK그룹이지만 올 상반기 내내 긴장하고 스스로 채찍질했다. 올 초부터 일부 계열사를 중심으로 임원과 신입사원의 연봉을 10~20% 줄이고, SK텔레콤의 임금을 동결하는 결단을 감행한 것. 최태원 회장은 올 상반기 내내 “‘SK 불사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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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외환위기나 최근의 SK글로벌 사태처럼 더한 상황도 이겨냈기에 ‘이 정도는 문제없다’고 보는 안이한 ‘SK 불사론’을 경계해야 한다.”최태원 회장은 2009년 신년사를 통해 올 한 해 SK의 행보가 어떠해야 할지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현재 중요한 것은 ‘안정’이 아닌 ‘생존’이라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재계 리포트 | -변신 모색하는 SK그룹

그룹 창립 56주년인 4월8일. 경기도 용인 SK아카데미에서 ‘SK 한마음 한 뜻 대(大)선언식’을 가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날 행사에는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 김신배 SK C&C 부회장 등 주요 계열사 CEO와 SK 주요 계열사 노조위원장, 구성원 대표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회사가 어려울 때 고통을 분담하는 대신 고용안정에 노력해 위기를 극복한다는 내용에 합의하기 위해서였다. 그 동안 개별 기업 노사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평화선언을 한 적은 있지만, 그룹 단위 전체 노사가 고통분담과 고용안정 등을 합의한 것은 SK그룹이 처음이다.

SK그룹은 10년 전인 IMF 위기 때도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위기를 극복했다. 위기일수록 사람이 중요하며, 위기를 극복하는 주체도 결국 사람이라는 것이 그룹의 경영철학이기 때문이다. 최 회장이 올해 최대 화두로 내세우는 말 역시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소통경영이다.

올 상반기 부쩍 잦았던 최태원 회장의 현장경영이 이를 뒷받침한다. 최 회장은 3월과 4월 두 달 동안 연이은 관계사들의 ‘현장경영’에 직접 나섰다. 3월5일 워커힐과 SK네트웍스 에너지마케팅컴퍼니 방문을 시작으로 SK텔레콤 남산사옥·SK증권·SK브로드밴드·SK케미칼·SK텔레콤 분당사옥·SK C&C 분당사옥· SKC 수원공장을 거쳐 SK해운까지 쉼 없이 현장을 방문했다.

이어 SK건설·SK에너지·부산도시가스·SK기술원에 이르기까지 생산현장은 물론 연구개발현장까지 직접 챙기고 나섰다. 관계사 구성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최 회장은 글로벌 경제위기 환경에서 생존의 의미와 생존 목표로 ‘행복’을 강조하고, “위기 극복을 통해 구성원 모두 ‘한마음 한 뜻’이 돼 스피드·유연성·실행력을 높여나갈 것”을 당부했다.

‘소통경영’으로 물꼬 트다

최태원 회장의 현장경영 ‘핵심 키워드 10’

1_ 한마음 한 뜻
2_ 강한 기업문화(Coporate Culture)
3_ 휴먼 캐피털(Human Capital)
4_ 소통(Communication)
5_ 생존(Survival)
6_ 서바이벌 플랜(Survival Plan)
7_ 스피드(Speed)
8_ 유연성(Flexibility)
9_ 실행력(Execution)
10_ 공격력

최 회장은 4월9일 그룹 연수원에서 열린 신임 임원 연수 과정 중 ‘회장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강한 기업문화를 창조하는 ‘컬처 크리에이터(Culture Creator)’로서 리더의 역할을 강조했다.

“소통은 강한 문화의 파급 속도를 빠르게 한다. 핵심은 강한 문화다. 남보다 문화의 진화 속도가 빠르고 강한 문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경험해야 한다.

각 회사를 ‘따로’ 움직여 고유한 문화를 개척하고, ‘또 같이’를 통해 간접경험을 나누는 네트워크를 형성해 우리 문화를 더 빨리 진화시켜 나가도록 하자.”

그룹 내 ‘위기’를 인식하고 ‘소통’의 과정을 거쳤다면 ‘실행’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기업인들과 함께 해외 순방길에 올랐을 때 노 전 대통령이 “해외에 나와보니 삼성 간판도 보이고 현대 간판도 보이는데 왜 SK 간판은 보이지 않냐?”고 최 회장에게 물어 무안해 했다는 일화가 있다.

SK그룹이 미래기업으로 뻗어 나가기 위한 실행 단계 제일 순위는 ‘글로벌 SK’다. 정확히 3년 전인 2006년 6월. 최태원 회장은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물었다. “자신이 속한 계열사가 국내에서 매년 10%씩 10년 동안 성장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임원은 손을 들라.” 당시 그 자리에 있던 100여 명의 임원 중 누구도 손을 든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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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에너지 직원들이 해외에서 원유를 시추하고 있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우리는 더욱 글로벌화해야 한다. 안은 포화상태에 이르렀으니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외쳤다.

SK는 수출이 아닌 내수로 성장해온 ‘내수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늘 남아 최 회장은 항상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동통신과 정유업종으로 성장한 내수기업의 이미지를 불식해야 한다는 것.

이후 중국 진출 등 꾸준히 해외 영역을 확장해온 SK그룹은 올 하반기에도 자원 개발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다는 전략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은 항상 준비하고 계속 추진해야 한다. 이런 준비가 없으면 다시 경제가 살아났을 때 우리는 현재의 위치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월 그룹 사내방송을 통해 방영한 ‘구성원과의 대화’에서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에도 세계화를 향한 도전은 멈출 수 없다는 의지를 이렇게 드러냈다. 최 회장 스스로 새해 초부터 ‘다보스포럼’이 열린 스위스로 날아가 세계 각국의 정치·경제 분야 지도자급 인사들을 접촉하는 등 ‘글로벌 행보’의 시동을 걸었다.

다보스포럼 개막 첫날인 1월28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를 만난 데 이어 다음날에는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과 1시간여 동안 단독으로 만나 자원외교를 펼쳤다. 최 회장은 우리베 대통령과 회동에서 “SK그룹이 페루와 자원협력 모델에서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남미의 또 다른 자원부국인 콜롬비아와 자원 개발 등에서 다양한 협력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에 우리베 대통령은 “콜롬비아와 SK가 함께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또 세계 최대 산유국인 알 팔리 아람코 회장과 만나 원유의 안정적이고 장기적 수급 방안을 협의하는 한편 슈와이브 KPC CEO, 알 바다크 사우디아라비아투자청(SAGIA) 청장과도 잇따라 만나 대규모 원유 정제공장 건설 프로젝트, u-City 사업 등 현재 진행되는 사업의 진행 상황과 추가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최 회장의 ‘글로벌 SK’를 향한 행보는 지난해에도 계속됐다.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85일을 해외에서 보냈다. 출장 거리만 지구 세 바퀴에 해당하는 11만9,040㎞였다.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참석차 페루를 방문했을 당시 예후데 시몬 무나로 총리 등과 만나 현지에서 원유 개발 및 LNG사업 등을 하는 SK와 페루 간 협력 강화 방안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앞서 지난해 5월에는 중국을 방문해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 중국 최대 에너지 기업인 시노펙(SINOPEC)이 추진 중인 에틸렌 생산공장 건설에 SK에너지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합작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글 박미숙 월간중앙 기자 [splanet88@joongang.co.kr]

<월간중앙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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