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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공기주머니 6개 매달자 사람 크기만 한 닻돌 떠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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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2일 오후 충남 태안군 마도 인근 해상 2구역에서 닻돌(옛 선박이 닻으로 쓰던 돌)이 물로 올라오고 있다. 공기주머니 6개는 닻돌을 떠올리기 위해 매단 것이다. [연합뉴스]

풍덩-. 풍덩-. 잠수사 두 명이 차례로 입수했다. 2일 오후 3시5분 충남 태안 마도 앞 해역. 바지선 한가운데에 놓인 ‘컨트롤 박스’ 화면에는 잠수사들의 헬멧에 달린 수중 카메라가 전하는 해저 영상이 실시간으로 잡혔다. 국내 유일의 해저 유물 탐사선 ‘씨뮤즈’호를 타고 찾아간 곳은 ‘마도 제2지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성낙준)가 한창 발굴 중인 마도 해역은 ‘해저 유물의 보고’라 불린다. 여기에서 옛 선박이 닻으로 쓰던 닻돌 11개가 발굴됐다. 이날 잠수사들은 그중 하나를 끌어올렸다.

◆인양 작업 10분 만에 떠오른 닻돌=오후 3시15분. 잠수사들은 닻돌에 미리 묶어둔 밧줄에 하얀 주머니 6개를 매달았다. 3시18분. 산소통으로 주머니에 공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3시20분. 모니터에 비친 잠수사들이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보냈다. 닻돌은 팽팽해진 공기주머니의 부력을 받아 서서히 떠올랐다. 3시23분. 공기주머니가 수면 위에 나타났다. 잠수사들도 잇따라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3시25분. 잠수사들은 닻돌에 묶어 둔 밧줄을 대기 중이던 크레인의 갈고리에 걸었다. 잠시 후 닻돌이 수면 위로 솟구쳤다. 물 위가 분주해졌다. 잠수사와 바지선 위의 발굴단, 크레인 조종사가 황급히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각목 받침대 위에 닻돌을 내렸다. 길이 1m72㎝, 폭 77㎝. 건장한 남성만 한 크기다.

마도 해역에선 12세기 무렵의 고려 선박 선체 일부(길이 10m, 폭 2m)가 발굴됐다. 2007년 먼저 발견된 고려 선박 ‘태안호’의 이름을 따 ‘태안2호’라 부른다. 바다에서 발굴된 고려 선박으로는 일곱 번째. 이곳에선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다른 선체의 조각도 발견됐다. 배 한 척에 앞뒤로 닻돌을 맸음을 감안하면, 최소 5~6척의 선박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상인 이름 적힌 도자기=올해 이곳에서 건져낸 도자기만 380여 점에 달한다. 고려청자와 조선 분청사기, 중국 송·원대 청자·백자·도기 등 11~18세기까지 다양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묵서가 적힌 중국 도자기 30여 점. ‘정강’ ‘구강’ ‘진강’ 등 ‘성씨+강(綱)’이 적혀 있다. 국립전주박물관 김영원 관장은 “중국 선단의 물주, 즉 중국 상단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고려사』에 송과 고려가 활발히 교역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고려에 드나들던 중국 상단의 이름이 유물로 입증된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고려 선박에서 조리·난방을 위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 석탄 30여 점도 발굴됐다. 삼국시대부터 석탄이 쓰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그 실체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볍씨, 화로와 무쇠솥, 맷돌, 대나무조각에 글씨를 쓴 죽간도 나왔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이번 발굴로 태안이 국제 무역항로의 중요한 지점이었음을 확인했다” 고 말했다.

태안=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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