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시]이보미씨 의상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머리에 쓰는 망건 (網巾) 이니 탕건 (宕巾) 이니 하는 단어는 벌써 한 세기전에 사망선고를 받은 말이다.

단발령과 함께 사라진 것은 이런 전통관모만이 아니다.

말총공예도 덩달아 역사 뒤편의 문화가 돼버렸다.

현대는 아이디어시대. 현대의상을 전공한 이보미씨 (30)가 망각의 세계 속에서 말총을 끄집어내 색다른 의상전을 열었다.

서울 청담동 갤러리가인에서 열리고 있는 이씨의 의상전 (8월14일까지)에는 말총으로 만든 드레스와 모자.바지.숄.가운 등 20여점이 나와있다.

02 - 518 - 3631. 말총은 말의 갈기나 꼬리털. 성분으로 봐서 사람의 머리카락과 비슷하다.

굵기가 조금 굵은 정도다.

말총의 장점은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광택과 색상이 자연스럽다.

거기다 촉감도 좋아 섬유소재로 손색이 없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면 디자인 전시실에 크리스천 디올이 만든 드레스 한 벌이 걸려있다.

말총을 직조기에 걸어 이색 섬유소재로서 실험작을 만들어 본 것이다.

이씨의 작업은 말총만 눈길을 끄는 것이 아니다.

말총은 올의 길이 (50~60cm)가 짧아 특별한 직조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홑탕건짜기.겹탕건짜기.바둑탕건짜기같은 기술이 그 옛날에 벌써 개발됐다.

이씨는 드레스에 탕건짜기로 커다란 무늬를 심어 시스루 룩 (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의상스타일) 드레스를 만들었다.

또 망건기법과 탕건짜기를 섞어짠 현대적인 차양 달린 모자를 선보이고 있다.

잊혀진 과거가 감각적인 현대와 만나 가볍고 경쾌한 느낌의 새로운 패션 세계를 열었다는 게 이화여대 배천범교수의 평이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