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이전 합의는 했지만…] 뒷감당 힘든 '독소조항'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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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 미군기지 이전 협상은 22일 마무리됐지만 과도한 비용 부담 등은 여전히 불씨로 남게됐다. 사진은 도하 훈련 중인 주한미군 장갑차. [중앙포토]

한국 협상단은 1990년 체결된 기지이전의 법적 근거 격인 양해각서(MOU)와 합의각서(MOA)의 독소조항을 상당부분 제거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최종 타결된 협상안에는 한국 측에 큰 부담을 지울 독소조항들이 대부분 살아 있어 국회에서 논란이 될 소지가 크다. 유례 없는 불평등 협정이란 비판을 받아온 MOU-MOA의 기본구조가 그대로 새 포괄협정(UA)과 이행합의서(IA)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여야 의원 69명의 감사원 감사 청구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감사는 용산기지 이전협상의 합법성과 부담 비용의 적절성을 따지는 내용이다.

협상단은 우선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적돼온 '기지 이전에 따른 손해 당사자들의 청구권 조항'이 삭제됐다고 주장한다. 주한미군사령부의 고용인을 비롯해 기지 이전에 따라 손해나 손실을 보는 당사자들이 청구하는 모든 형태의 배상이나 보상을 우리 정부가 모두 책임지도록 하는 규정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청구권과 관련해 한국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구절이 근거다. 하지만 문제는 함께 기록된 미국 측의 규정이다. "미국은 청구권과 관련, 주한미군에 적용되는 법(미국 법)에 따라 처리한다"는 내용이다. 미국 법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해외 미군기지에 대한 청구권은 책임지지 않는다"고 돼 있다. 따라서 청구권 문제가 발생하면 양국 중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도가 되는 것이다.

이사비용도 개악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90년 합의서 당시에는 미군 가구의 물리적 이동(이사)비용만 부담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그러나 최종 합의에는 "한국이 이사에 관해 '용역'을 제공한다"고 규정, 미군이 이사기간에 받을 일당과 숙박비도 부담하게 됐다.

건축기준을 미국 기준에서 미 국방부 기준으로 바꿨다는 내용도 문제다. 이 역시 개선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90년 MOU에서 미국 기준은 "'미 육군성 기준'을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미 국방부 기준'이어서 이번에 변경했다는 의미는 없다. 문제는 국방부 건축기준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한층 강화됐다는 점이다. 예전보다 훨씬 튼튼한 건물을 지어줘야 하는 만큼 한국 측이 부담할 건축비용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미군기지 이전과 직접 연관된 시설과 용역 외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다른 비용도 모두 한국이 부담토록 규정한 '기타 비용' 조항도 마찬가지다. 미국 측이 '불가피한 비용'이라고 주장하면 그대로 들어줄 수밖에 없게 돼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문제점을 적당히 봉합했지만 한국 측이 모든 이전비용을 포괄적으로 부담하는 구도는 그대로 있다"며 "협상안대로라면 30억~50억달러로 추산돼온 이전비용이 얼마든지 늘어날 위험성이 상존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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