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수호신-장승으로 변한 트랜스포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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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6월 24일 동시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2’는 미국과 한국에서 각종 흥행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중국에서는 영화의 시작 장면에서 상하이(上海)를 왜곡해 묘사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 중국 네티즌이 찍은 충칭(重慶) 첸장(黔江)현 한 농가에 높이 2m 가량의 트랜스포머 장승 사진을 올려 화제다. 현실 세계에서 강한 권력과 힘을 구사한 존재는 중국인들에게 간혹 신(神)으로 떠받들여진다. 여러 신들을 함께 모시며 복을 비는 중국의 오랜 도교적 전통 때문이다. 『삼국지』의 관우(關羽)와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둥(毛澤東), 대만의 철권 통치자 장제스(蔣介石) 등은 죽은 뒤 신으로 모셔진 대표적인 인물이다. 악당을 호쾌하게 물리치는 트랜스포머가 그 예외일 리가 없다. 트랜스포머에 열광한 한 중국인이 집안에 들어올 악귀를 무찌를 ‘문지기 신’으로 트랜스포머를 선택한 것이다. 6월 24일자 ‘중경상보(重慶商報)’는 이 소식을 전하며 사진을 본 네티즌들이 “이런 작은 산동네에까지 팬을 확보하다니, 트랜스포머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문지기 신으로 변신한 트랜스포머=공개된 사진 속의 트랜스포머 옆에는 광주리를 메고 밀짚모자를 쓴 노인이 서 있다. 사진을 올린 네티즌은 이 사진이 며칠 전 친구가 첸장(黔江) 린어(隣鄂)진 가오핑(高坪)촌에서 찍은 것이라고 밝혔다.

가오핑촌 계획팀 간부 왕씨는 기자에게 이 트랜스포머 이야기를 듣자 “그 서양 기계는 우리 마을 명물이이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트랜스포머의 주인은 이 마을 주민 우정화(吳正華)씨며, 사진 속 노인은 73세의 우씨 부친이라고 설명했다. 왕씨에 따르면 우정화씨 집 문 앞에 높이 2m의 로봇이 설치되자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로봇이 불빛을 내뿜고 경적을 울릴 수 있으며 심지어 움직일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모두 깜짝 놀랐다.

기자는 트랜스포머의 주인 우정화씨와 연락을 취했다. 올해 30세인 우씨는 기자에게 이 트랜스포머는 "지난달 우한(武漢)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해 만든 것"이라며 "트랜스포머를 문 앞의 수호신으로 세우기 위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우씨는 “트랜스포머가 엄청난 힘으로 악당들을 물리칠 수 있다”며 "어릴 때부터 로봇을 갖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소원을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문 앞에 로봇을 세워 놓고 전기선을 연결해 문지기신으로 역할을 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트랜스포머 문화가 일반 대중에까지 침투=촨메이(川美) 애니메이션학원의 쩡(曾)교수는 20년 전 컬러텔레비전이 보급되기도 전에 만화로 만들어진 트랜스포머가 당시 어린이들에게는 흐릿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었다고 설명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영화로 만들어진 트랜스포머가 상영되자 옛 추억을 갖고 자라난 세대들이 다시 옛 동심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 쩡 교수는 "당시 트랜스포머 장난감조차 살 수 없었던 세대들이 이 영화를 보자 어린 시절의 한을 풀기 위해 이같이 열광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영화 ‘트랜스포머’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고도의 흥행성을 갖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점을 넘어,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의 천진난만하고 근심과 걱정이 없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네티즌들은 “트랜스포머는 젊은 이들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열광하는지 몰랐다”, “쿨하다. 나도 트랜스포머 문지기신을 두고 싶다”며 열광했다.

선우경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kysun.s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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