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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신탁손실분담 원칙에 맞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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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발표한 5개 퇴출은행의 신탁계정 인수처리방침은 단기적 혼란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다.

그러나 퇴출은행을 인수시키는 구조조정을 준비하면서 미처 이같이 중요한 문제에 대비하지 않았다는 점과 신탁 해지요구분에 대해 한국은행이 콜자금을 무한으로 방출하겠다는 정책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정부는 퇴출은행의 실적배당신탁을 원칙적으로 인수은행이 떠맡기로 정하고 앞으로 한달간 실시될 실사가 끝나기 전 해지 (解止) 분은 원금만 보장하고 실사가 끝나기 전의 만기도래분은 원금에 9%의 정기이자를, 실사후에는 실제 발생수익을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정부 주장대로 실적배당을 받을 수 있을지 두고봐야 하겠지만 원금이라도 건지기 위해 해지러시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많은 고객이 신탁상품을 단지 금리를 더 많이 주는 예금 정도로 인식해 왔고 이 점이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중의 하나다.

문제가 되고 있는 부실신탁계정의 처리문제는 단순히 퇴출된 은행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 조건부승인을 받은 외환.조흥.상업.한일 등 대형시중은행과 나아가 3개 투신사에도 비화할지도 모를 뇌관이다.

따라서 정부가 약속한 예금자보호의 범위를 벗어난 신탁자산의 손실에 대해 무조건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고 그냥 놔두는 것도 큰 혼란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무작정 정부요구대로 부실신탁계정을 인수하게 되면 자신이 언젠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처지인 인수은행으로서는 인수하기가 곤란한 것이 현실이다.

당장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편법을 썼지만 인수은행의 재무구조악화로 이어질 경우 문제는 더 커질 것이 우려된다. 과연 5개 퇴출은행의 부실신탁규모가 정부발표대로 1조2천억원에 불과한지 실사가 끝나면 정확한 규모를 밝혀야 할 것이다.

정부발표분에는 주식투자운용손실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다른 은행의 부실신탁자산과 투신사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확실한 손실분담원칙을 이번 기회에 분명히 정할 필요가 있다.

이번 퇴출은행뿐 아니라 다른 은행.투신사의 경우도 기준과 원칙이 분명하고 일관돼야 한다.

우리는 시장경제 원칙에 맞게 이익을 보려는 경제주체는 자기 결정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 사태해결의 실마리라고 본다.

앞으로는 고객들도 자기가 구입하는 금융상품의 잠재적 위험을 자신이 가려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정부는 한은의 콜자금공여가 통화공급의 방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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