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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NSC, ‘충돌의 팀’ 우려 깨고 ‘견제와 균형’의 미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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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호 20면

‘라이벌의 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에 붙어 다니는 말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핵심 멤버들이 하나같이 개성 강한 거물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의 조셉 바이든 부통령, 최중량급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사상 처음으로 정권 교체 때 자리를 지킨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해병대 사령관(대장) 출신의 제임스 존스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여기에 게이츠와 존스는 공화당 계열이다. 게이츠는 아버지 조지 부시 행정부 때 대통령 안보부보좌관과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이래 부시가의 사람이 됐다.

라이벌의 팀? 라이벌의 힘!

존스는 현역 시절부터 존 매케인 상원의원(전 공화당 대통령 후보)과 친한 사이로 대선 때 자문역까지 맡았다. 보수 색이 짙은 ‘초당파의 팀’이기도 한 셈이다. 일방주의가 아닌 국제협조주의, 하드 파워가 아닌 소프트 파워를 전면에 내건 행정부지만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 등에서 강경책을 구사하는 것은 이와 맞물려 있는지 모른다. 사람이 곧 정책이기 때문이다.

당초 외교안보팀은 ‘충돌의 팀’(Team of Clash)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정권 출범 다섯 달이 지난 지금 이들 간 불협화음 얘기는 듣기 힘들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대외정책을 둘러싼 색깔론으로 갈 데까지 갔던 진짜 라이벌 오바마-힐러리는 찰떡궁합이라는 보도다(이코노미스트). 힐러리는 늘 몸을 낮추고 절제된 수사를 구사한다. 9일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선 “대통령은 강하고 사려 깊으며 단호하다. 멋지게 일하는 그를 모시는 것은 영광”이라고 했다.

외교안보팀의 자체 평가도 흥미롭다.
“제임스(안보보좌관)는 팀을 뭉치게 하는 접착제다. (외교안보팀은) 라이벌의 팀이 아니라 하나의 팀이다.”(게이츠,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
“부통령은 미 외교정책 결정 과정의 최정점(상원 외교위원장)에 있어왔고, 우리는 그의 말을 경청한다.”(힐러리, CBS 방송 인터뷰) 외교통 바이든과 힐러리의 관계가 외교안보팀 갈등의 진원이 될 것이란 관측은 현재로선 맞지 않는 듯하다.
“라이벌의 팀은 다른 급에서 존재할 뿐 NSC 각료급 간에는 없다.”(존스, 대서양이사회 연설)

그렇다고 어느 한 사람이 오바마의 귀를 독점했다는 얘기도 나오지 않는다. 다들 파이를 나눠 갖는 형국이다. 바이든은 백악관의 ‘중산층 대책팀’을 이끌면서 외교안보 정책에도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있다. 외교안보 정책 1순위인 아프가니스탄ㆍ파키스탄 문제에서 의회 대책까지. 약방의 감초 격이다. 그는 2월 뮌헨 연설에서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해 “리셋(Reset) 버튼을 눌러야 할 때”라고 해 화제를 불렀다. 힐러리는 3월의 미ㆍ러 외무장관 회담에서 빨간 리셋 버튼 모형을 선물했다.

하지만 바이든의 역할은 수석 보좌관(Adviser-in-chief)이나 부처 간 문제 해결사에 가깝다는 평가다(뉴욕 타임스).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부통령실에 한때 35명의 외교안보팀을 운영하며 대외정책을 주물렀던 딕 체니 부통령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체니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힐러리는 ‘탈선’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수석 외교관(Chief diplomat)이라고 한다. 그는 매일 돌아가는 상황을 관리하기보다는 전략적 구상에 무게를 둔다고 한다. 대외 원조, 라틴아메리카ㆍ아시아와의 관계 설정이 그것이다. 위기관리형이라기보다 전략형 국무장관 쪽에 가깝다. 지역별로 다수의 중량급 특사를 둔 것도 한 맥락이다. 국무부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리처드 홀브룩 아프간ㆍ파키스탄 특별 대표와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 출신의 조지 미첼 중동 특사는 힐러리뿐만 아니라 대통령에게도 보고한다.

일각에선 오바마의 특사 활용을 힐러리에 대한 견제로 보기도 하지만 힐러리는 본인이 원했다고 ABC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힐러리는 오바마 행정부 취임 100일을 맞아 CNN이 실시한 지지도 조사에서 71%로 행정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오바마는 64%였다.
게이츠는 NSC 회의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의견을 낸다고 한다. 꾸미지 않는 그의 스타일을 오바마도 좋아한다고 한다. 심지어 오바마는 의회를 통과한 국방예산에 대해 게이츠가 만족하지 않으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오바마 측근들은 주장하고 있다(타임).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는 얘기다.

그래서 당초 1년 정도만 국방장관을 맡을 것으로 점쳐졌던 게이츠의 장수설이 흘러나온다. 그는 최첨단 F-22 전투기 생산 중단을 반대한 공군장관과 총장, 대통령 생각보다 더 많은 아프간 파병을 주장해온 현지 사령관을 전격 경질하기도 했다. 그는 이념을 중시하지 않는 현실주의자로 분류된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의 직속 상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안보보좌관의 맥을 잇고 있다.

그는 연임 결정 직후 오바마를 전임 부시보다 “더 분석적”이라고 말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존스는 막후 조정형이다. 장군 출신 국가안보보좌관은 수두룩했지만 사령관(유럽사령부와 해병대) 경험자는 처음이다. 존 웨인을 연상시키는 외모다. 그는 매주 수요일 아침 힐러리·게이츠와 함께 그의 사무실에서 협의를 한다. 게이츠는 그를 “정직한 중재자(Honest broker)”라고 평가한다. 그는 오바마를 바로 옆에서 보좌하지만 정상회담 등 공식 행사 때 함께 찍은 사진을 찾기 힘들다.

행사 성격에 따라 NSC 부하나 다른 부처 인사에게 자기 자리를 넘겨준다. 업무도 굵직한 것만 챙기고 세부 사항은 토머스 도닐런 부보좌관에게 맡긴다고 한다(뉴욕 타임스). 리처드 닉슨ㆍ제럴드 포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쥐락펴락했던 헨리 키신저 당시 국가안보보좌관, 지미 카터 행정부 대외정책의 핵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안보보좌관과는 큰 차이가 난다.

네 명의 배경·성향을 보면 오바마 외교안보팀은 분권형으로 보인다. 견제와 균형이다. 일각에선 이들 사이를 ‘창조적 긴장관계’로 표현한다. 아들 부시 행정부 당시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축이 외교안보 정책을 좌지우지했던 구조와는 딴판이다.

“내가 이 팀을 짠 것은 강한 개성과 강한 의견의 신봉자이기 때문이다. 백악관의 위험 중 하나는 집단 사고에 빠지고, 토론과 이견 없이 모든 사람이 모든 것에 동의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활발한 토론을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정책은 대통령으로서 내가 결정할 것이다.” 지난해 12월 8일 외교안보팀 인선을 발표하면서 밝힌 오바마의 용인술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지뢰밭은 있다. 하나는 바이든의 야망과 설화(舌禍)다. 그는 오지랖이 넓고 67세지만 7년 후 대통령 경선에 나설 생각이다. 14일 NBC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거침없는 말투와 실수로도 유명하다. 4월의 CBS 인터뷰에서 사회자가 인터뷰를 걱정하느냐고 묻자 “두려운 것은 당신이 아니라 바로 나”라고 하기도 했다.

그는 실수를 줄이려고 지금은 연설과 회의 때 프롬프터와 노트 카드를 쓰고 있다. 오바마는 같은 CBS 인터뷰에서 “바이든은 의견을 개진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면서도 “그것이 내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두둔했다. 하지만 바이든의 스타일은 외교안보팀에 마찰음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평가다.

존스 보좌관도 업무 스타일이 도마에 오른다. 밤에 일하지 않는 것과 업무 능력이 비판을 받고 있다. 폭스뉴스는 존스가 마치 알츠하이머에 걸린 것처럼 자주 잊어버린다는 NSC 직원의 말을 인용하면서, 백악관 관리들은 그가 가을을 넘기기를 기대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 내 ‘정치국원’으로 불리는 람 이매뉴얼 비서실장과 데이비드 액설로드 선임보좌관 등 50대 초 측근 실세 그룹과 66세 존스와의 세대 차이에서 오는 소통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역대 미국 외교안보팀은 정책 주도권을 놓고 갈등을 빚기 일쑤였다. 안보보좌관-국무장관, 국무장관-국방장관 간 불화가 적잖았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 정도가 예외다. 당시 스코크로프트 안보보좌관의 조정 덕분이다. 그 부시 행정부는 냉전 붕괴를 관리했고, 걸프전을 치렀다. 오바마는 외교안보팀 인선 직전에 스코크로프트에게 많은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월스트리트 저널). 오바마가 ‘라이벌의 팀’을 ‘화(和)의 팀’으로 끌고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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