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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고려인 <중> 빈곤층으로 전락한 고려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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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02세 러시아 할머니 아파트에는 고려인 여성 리 나이스치아(左)와 김 돈나(右)가 살고 있다. 할머니에겐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고, 두 고려인에겐 살 집이 필요했다. 후르시초프 시절에 지어진 아파트는 좁고 허름했다. [모스크바=강인식 기자]

1907년 11월생. 102세 러시아 할머니에겐 가족이 없다. 모스크바 도심 주거지역에 10평(33㎡) 남짓의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을 뿐이다. 그 덕에 할머니는 두 명의 동거인을 얻을 수 있었다. 러시아 국적이 없는 두 명의 고려인 아줌마. 김 돈나(58)와 리 나이스치아(47).

아파트는 한국의 낡은 오피스텔을 연상케 했다. 작은 방과 부엌이 붙어 있는 형태다. 침대는 두 개. 창가 침대는 할머니, 벽 쪽 침대는 돈나 것이다. 나이스치아는 바닥에서 잔다.

현관을 열자 할머니가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돈나가 방금 기저귀를 갈아준 뒤 몸을 말려주고 있었다. 할머니의 오른손이 심하게 떨렸다. 할머니가 명확히 알아보는 이는 돈나와 나이스치아뿐이라고 했다. 돈나는 할머니와 뭔가 얘기를 나눴다. 할머니는 곧잘 웃었다.

2002년 여름, 돈나는 고향인 우즈베키스탄을 떠나 모스크바로 건너왔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해 엔지니어로 중년까지 일했다. 하지만 임금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러시아에 살고 있는 친척이 “모스크바로 오면 돈벌이가 있다”고 했다. 이웃의 상당수가 이미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대도시로 떠나갔다. 돈나는 먼저 정착한 고향 사람들을 통해 일을 소개받았다. 한국에서 온 기업인의 아이를 돌봐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일주일에 서너 집을 돌아다니며 일했다.

돈나는 2003년 1월, 우연한 기회에 할머니를 소개받았다. 할머니는 자신의 전 재산인 아파트를 모스크바의 한 교회에 기부하기로 예전부터 약정했었다. 상속권을 가진 교회 측은 성실한 도우미를 찾았다. 고려인은 그런 면에서 평판이 좋았다. 교회 측은 할머니를 돕는 조건으로 월 4000루블(약 17만원)을 주기로 했다. 돈나는 “기적 같은 행운을 얻은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도심의 10평짜리 아파트의 가격은 2억원을 호가한다. 월 임대료는 100만원을 웃돈다. 돈나는 할머니를 만나기 전에 10평도 안 되는 비좁은 아파트에서 7명의 고려인과 함께 살았다. 칼잠도 모자라 앉아서 밤을 지새울 때도 있었다.

최근 많은 고려인이 대도시로 유입되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아파트 하나를 공동으로 빌려 공동생활을 한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고려인 목사 리가이 다비드는 “한국의 70~80년대 산업화 시대가 이랬을 것 같다. 수많은 이가 일과 꿈을 찾아 대도시로 들어오고 있다. 모스크바에 몇 명의 무국적 고려인이 살고 있는지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모스크바 위성 도시를 합하면 고려인이 적어도 4만 명 이상 살고 있을 것”이라며 전체적인 고려인 규모에 대해 설명했다. ‘무국적 고려인’이란 현재 거주하는 국가의 국적이 없는 고려인을 지칭한다. 옛 소련 붕괴의 와중에 여권을 분실하거나 갱신하지 않아서, 혹은 불법체류 신세가 돼서 무국적 딱지가 붙게 됐다.

돈나는 할머니를 도우며 가정부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렇게 월 1만5000(약 64만원)~2만 루블(약 85만원) 정도를 벌고 있다. 이 중 상당액은 고향의 딸에게 보내진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지만 고정된 수입이 없는 딸. 그렇다고 고향을 떠날 수도 없는 딸을 위해 돈나는 모스크바에서 늙어 가고 있었다.

나이스치아의 사정도 돈나와 비슷하다. 할머니와 살기 전에는 작은 아파트에서 9명이 합숙 생활을 했다. 그 역시 우즈베키스탄이 고향이다. 월 150루블의 임금 수준으론 도저히 살 수 없어 모스크바행을 택했다.

다비드는 “모스크바로 유입되고 있는 고려인 중 상당수는 젊은이다. 이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모스크바의 위성도시인 도모제도보의 작은 채소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류 알라(23·여)도 그런 사례다.

알라는 우크라이나에서 대학까지 나왔다. 더 많은 기회를 잡기 위해 모스크바로 건너왔다. 알라에게는 두 가지 소원이 있다. 러시아 국적을 취득해 모스크바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첫 번째고, 한국의 대학에 가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것이 두 번째다. 그러나 꿈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알라처럼 대도시로 유입된 청년들은 빠르게 빈민층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1937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강제이주해 온 고려인들이 최초로 정착한 카자흐스탄의 초원지대 우슈토베. 고려인들은 7개월간의 토굴 생활을 기록한 비석을 세웠다. [우슈토베=김준술 기자]


대도시 유입 문제는 상대적으로 경제 여건이 좋은 카자흐스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우즈베크에서 카자흐 알마티로 건너와 일하는 박 라야(53·여)는 “카자흐에서는 보모로 일해도 월 500달러(약 64만원)를 벌 수 있다. 우즈베크와 월수입 차가 서너 배 이상 나니, 국경을 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모스크바에서 20여 년간 살아온 한 고려인은 “옛날엔 소련 지역을 돌아다녀도 문제가 안 됐는데, 90년대 들어 국적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살았던 고려인이 국제 정세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경제 격차로 인한 이동이 잦아지면서 무국적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다비드는 “고려인이 소련 지역에서 70여 년을 살며 많은 기여를 했는데,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들을 불법체류자로 모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연방이민청의 이에카체리나 예르고바 부청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무국적 고려인의 2, 3세 문제는 우리의 관심사다. 고려인의 체류 문제가 정상화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별취재팀 : 우즈베키스탄 , 카자흐스탄 , 러시아 , 우크라이나 =김준술·강인식 기자

무국적 고려인 <상> 무국적 해법 내놓은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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