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똥파리’등 최근 독립영화의 활약이 눈부십니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최근 몇년 새 한국영화의 스펙트럼이 많이 넓어지고 다채로워졌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향후 한국영화의 토양을 더욱 기름지게 할 것으로 기대되는, 소위 ‘다양성 영화’의 대표 사례라 할 수 있는 신예 독립영화감독들을 릴레이 인터뷰합니다. 이상용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 유운성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김난숙 ‘영화사 진진’ 대표와 중앙일보 문화부 영화팀 양성희·기선민 기자가 함께 선정했습니다.
노경태 감독은 일주일 만에 시나리오를 쓰고 일 년 동안 이미지를 구상 한다. 그는 “보는 사람이 감동으로 잠을 못 이룰 정도의 예술적 체험을 선사하는 수준 높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 이제 불과 두 편을 발표했을 뿐이지만 두 작품 모두 인생행로를 극적으로 전환한 보람을 느껴도 좋을 만큼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첫 장편 ‘마지막 밥상’은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과 부산영화제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NETPAC)을 받았고, ‘마지막 밥상’ 덕에 한·불 합작이 된 두번째 장편 ‘허수아비들의 땅’은 지난달 제62회 칸 국제영화제 ACID(프랑스독립영화배급협회) 프로그램에 초청됐다. ACID는 해마다 국적불문하고 독립영화 9편을 선정, 프랑스 내 개봉을 지원한다. 이밖에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 등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 초청받았 다.
◆백남준 스타일의 영화가 꿈=‘허수아비들의 땅’에는 매립쓰레기 탓에 몸이 점점 중성화되고 있다고 믿는 트랜스젠더 여성(김선영), 필리핀에서 입양된 소년(정두언), ‘코리언 드림’을 좇아 한국으로 시집온 필리핀 여자 등 세 명이 등장한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흥미롭지만, 기승전결이 뚜렷하지는 않다. 대사가 거의 없고, 이미지 위주의 화면이 길고 느리게 진행된다. 꼭꼭 씹어 입에 넣어주는, 친절한 화법은 분명 아니다.
두번째 장편 ‘허수아비들의 땅’.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나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로베르 브레송처럼 “감동으로 잠을 못 이루는 예술적 체험을 선사하는 것”이 그의 희망이다. 국내 작품으로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꼽는다.
◆시나리오는 1주일, 이미지 구상은 1년=이런 지향점을 가진 그의 작업방식은 남다르다. 시나리오는 대략 일주일 만에 끝낸다. 캐릭터만 정해지면 끝이다. 대신 그 캐릭터들을 연결시킬 이미지를 구상하는 데는 1년이 꼬박 걸린다. “제 삶에서 부딪치는 모든 것들로부터 다양한 이미지를 떠올리고 메모해놓습니다. 영화 촬영은 만들어놓은 인물과 이미지를 뜨개질하는 작업이죠.”
차기작은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을 소재로 한 ‘블랙 스톤’. 인물에 대한 구상도 이미 끝났다. ‘마지막 밥상’ ‘허수아비들의 땅’에 이어 환경오염과 인간사의 아이러니를 소재로 한 3부작이다. 그가 관심있는 사람들은 ‘허수아비들의 땅’에 나온 성적소수자·입양아·이주외국인 등처럼 아웃사이더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했던 유년시절의 기억, 유색인종을 ‘투명인간’으로 느끼게끔 하는 미국사회 경험 등이 항상 제 시선을 소수자 쪽으로 이끄는 것 같습니다.” ‘대중과의 소통’이 화두가 된 듯한 최근 독립영화 흐름에서 그는 아웃사이더가 맞다. 외롭지만, 그만큼 희귀한 존재라는 얘기도 될 것이다.
기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