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에 밀려 … 굿바이! 코다크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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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세계 최초의 컬러 필름이 디지털 카메라에 밀려 74년 만에 퇴장한다.

로이터·AP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이스트먼코닥은 코다크롬(사진)의 생산을 중단한다고 2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1935년 등장한 코다크롬은 흑백필름을 밀어내고 컬러사진 시대를 열었다. 50·60년대에 최고 인기였다. 생동감 있는 색상과 오래도록 변치 않는 내구성으로 특히 사진작가와 영화 촬영기사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63년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의 저격 암살 장면을 담은 에이브러햄 재프루더의 8㎜ 동영상도 이 필름으로 찍었다. 가수 폴 사이먼은 73년 ‘나에겐 니콘 카메라가 있어요. 사진 찍기를 좋아해요. 그러니 엄마, 내 코다크롬을 뺏어가지 마세요’라는 가사의 ‘코다크롬’이란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신개념 필름이 등장하면서 몰락이 시작됐다.

코다크롬은 특수 시설에서만 현상이 가능한 슬라이드용 필름이다. 어디서든 현상할 수 있는 같은 회사 신제품 엑타크롬·수퍼골드나 경쟁사 후지필름의 벨비아·수퍼리아 등이 출시되면서 코다크롬은 궁지에 몰렸다. 급기야 수년 전엔 현상소가 지구촌에서 단 한 곳 남을 정도가 됐다. 2000년대 들어 디카가 널리 보급되면서 필름 자체의 수요도 줄었다. 독일 아그파, 일본 코니카 등이 잇따라 필름 제조를 중단했다. ‘컬러필름의 원조’인 코다크롬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코닥 필름 부문의 메리제인 헬리야 사장은 “회사의 아이콘인 코다크롬의 생산 중단은 아쉽다. 하지만 당분간 남은 걸 판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고는 가을께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 코닥 매출의 70%가량은 디카·사진인쇄기 등 디지털 부문에서 나온다. 코다크롬의 비중은 1%도 안 된다.

코닥은 최후의 코다크롬 생산품을 유명 사진작가 스티브 매커리에게 헌정하기로 했다. 그가 이 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미 로체스터의 코닥박물관에 비치해 기념하겠다는 것이다. 매커리는 85년 코다크롬으로 촬영한 아프가니스탄 난민 소녀 얼굴을 내셔널 지오그래픽 표지에 실어 큰 관심을 끌었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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