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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독일유학출신 이현찬의 1인 인형연극 '나그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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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사람들이 저마다 '슛, 골인' 의 축제를 기대하며 TV앞을 지키는 6월말, 소리없이 준비된 또다른 축제가 대학로 문예회관소극장에 올라간다.

마임쪽에서는 극단 사다리.유진규.남긍호.박미선, 무용쪽에서는 댄스컴퍼니 조박.김은희.김용철.이은주, 여기에 인형연극의 이현찬이 가세하는 '젊은 문화 축제 - 98장 (場)' 이 그것. 독일에서 8년만에 돌아와 국내에 첫선을 뵈는 이현찬의 1인 인형연극은 '인형' 이 등장하는 '극' 에 대한 통념을 깨는, 새로운 무대란 점에서 화제가 돼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인형' 과 '사람' 사이의 경계. 이번에 공연할 작품 '나그네' 의 무대를 시작하는 것은 인형이 아니라 배우이자 연출자인 이현찬이다.

그가 인형 뒤에 보이지 않는 조종자로 숨어 버리는 일은 결코 없다.

줄인형이든, 사람 반 만한 크기의 나무인형이든 그가 이 인형에서 저 인형으로 옮아가는 과정 자체가 극의 흐름속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인형이 모두 완전한 형태를 갖춘 것도 아니다.

두 다리만으로도 창녀의 생활을 묘사하는가 하면, 줄타기 곡예사의 중심잡는 막대만으로도 서커스분위기를 낸다.

"곰인형이 사람을 닮아서 인형이 아니잖아요. 형태에 기본적인 유사성이 있고, 공연자와 관객이 곰이라고 인정하면 그게 곰인형이지요. " 이씨의 설명은 전통적인 연극에서 '소품' 의 지위를 벗어나기 어려웠던 사물을 배우와 대등한 지위로 극에 참여시키는 오브제연극과 맥이 닿아있다.

이같은 경향은 지난달말 그가 참여하고 돌아온 보쿰의 독일국제인형연극제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던 흐름. 탈현대적인 실험장르로 자리하고 있는 유럽쪽의 인형연극은 인형극 = 아동용이란 고정관념이 지배적인 우리네 풍토와 사뭇 다른 셈이다.

'나그네' 의 주제는 상당히 상징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선각자.노동자.창녀로 묘사된 세 인형이 각각 눈과 귀와 입이 막히는 과정은 나선형 무대 장치, 그림자로 묘사된 창살과 함께 다소 염세적인 인생관을 부각시킨다.

"배우도 나그네, 인형도 나그네, 나선처럼 반복되는 떠돌이 방랑이 인생의 본질이라는 거죠. " 서울예전.극단 목화를 거쳐 뒤늦게 유학길에 올라 국립베를린연극예술학교를 마치고 다시 서울에 돌아온 자신의 경험이 담긴 듯한 말이다.

영감의 원천으로 지적한 케테 콜비츠의 그림.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처럼 어두운 느낌의 무대지만, 이 무대를 풀어내는 언어의 새로움은 초여름의 대학로를 한결 풍성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젊은 문화 축제 - 98 장 (場) 은 19~30일. 이현찬의 인형연극은 김용철의 무용.유진규의 마임과 함께 23~25일 공연된다.

02 - 424 - 1421.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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