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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진 대표작가 10 ‘2009 오디세이’전 2 - 배병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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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2005년, 세계적인 팝 가수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엘튼 존이 배병우(59)씨의 소나무 사진을 3000만원 가까운 값에 사들여 화제를 모았다. 2007년에는 세계 양대 경매사인 크리스티 옥션에서 배씨의 소나무 사진 두 장이 1억원도 훨씬 넘는 값에 낙찰됐다는 소식이 뉴스가 됐다. 사진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도 이제 ‘소나무’라고 하면 배병우라는 이름을 떠올릴 정도다. 예술로서 사진의 대중성과 위상 뿐 아니라 사진의 경제적인 가치를 끌어올리는데도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사진가 배병우씨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린 ‘소나무’ 연작.


소나무는 바다와 함께 배병우 사진의 원점이다. 유년시절을 보낸 여수의 고향집 뒷산의 소나무들과 멀리 내다보이던 바다는 그의 의식 깊숙한 곳에 지워지지 않는 원풍경으로 각인되었다. 그리고 40년 가까운 세월을 바다와 하늘과 나무들과 아득한 태고의 시간 속에 모든 것을 묻어버리는 새벽녘의 서늘한 대기를 가슴에 품고 살아오고 있다.

배병우의 소나무는 구도나 광선의 상태에서부터 프린트에 이르기까지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함을 갖추고 있다. 나뭇가지나 수평선 위치를 1㎝만 옮겨도 화면의 균형이 깨져버리고 말 것 같은 미묘한 조화와 긴장감은 보는 사람을 거부하기 어려운 힘으로 사진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의 소나무는 분석이 아닌 직관을 통해서 도달하는 한국인의 정서적인 공감이다. 바꿔 말하면, 한국인의 유전자 수준에 내재되어 있는 기시적인 풍경과 같은 것이다.

눈보라와 비바람을 견디며 질긴 생명력으로 서있는 소나무는 한민족의 삶과 정신의 원형이고 상징이다. 배병우씨에게 그런 소나무는 화면을 구성하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사진 그 자체를 성립시키는 근원적인 요소다. 전신을 뒤틀며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소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서구의 합리적이고 양식화된 것과는 다른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에토스)가 담긴 자연 공간을 빚어낸다.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서구를 매료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풍경사진에는 처음으로 눈을 뜬 사람이 바라본 고대의 정경이 펼쳐져 있다. 은의 입자들이 강한 밀도로 쌓인 그의 사진 속에서는 시간은 아주 느린 속도로 흐른다. 그가 어디서 무엇을 찍었건 우리는 그것이 배병우의 사진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이미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었고 그의 시선이 사진을 처음 시작했던 지점에 일관되게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주제도 소재도 쉽게 바꾸는 다른 사진가들과는 달리 배병우는 한 번 잡았다 하면 수십 년 동안 같은 것을 줄기차게 찍어나간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디지털기술이 판치는 요즘도 고행자처럼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둘러메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그는 누군가의 말마따나 ‘원시적’인 사진가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사진에는 회전이 빠른 왼쪽 뇌를 사용하는 다른 사진가들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는 40여 년간 끊임없이 긴 거리를 이동했다. 한 장소에 이르면 다음 장소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것은 변화나 확대가 아니라 깊이다. 그의 가슴 속에는 아직 아무도 찾아내지 못한 미답의 풍경이 펼쳐져 있고,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그는 앞으로도 그 미지의 풍경을 찾아나서는 순례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승곤(순천대 사진예술학과 교수)

◆배병우는=1950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응용미술학과 재학중 미대를 나온 고향 선배가 사진을 권해 전공을 바꾼 뒤 독학했다. 고향을 닮은 바다와 바위 등 자연을 우직하게 담다가 1980년대부터 전국의 솔숲을 샅샅이 뒤져 소나무와 만난 뒤 84년부터 수묵화를 닮은 소나무 작업에 매달려 왔다. ‘종묘’ ‘앙코르와트’ 등 침묵의 유적지를 정갈하게 담은 사진으로도 이름이 나 스페인 문화재국이 안달루시아의 알람브라궁전 촬영을 의뢰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교수다.



작가에게 ‘한수’ 배우세요
‘2009 오디세이’전 부대행사

새로운 밀레니엄 이후 10년. 한국 현대사진의 화려한 항해여정의 새로운 막이 그 중심에 선 대표작가 10명과 그들의 최고 작품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본 전시는 7월 14일부터 8월 1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됩니다.

특히 전시기간 중 총 4회에 걸쳐 성인 관람객을 대상으로 참여작가 구본창·이갑철·오형근·고명근씨의 ‘마스터 클래스’가 진행됩니다(참여비 3만원). 또한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방학을 맞아 어린이 관람객을 위해 진행하는 아카데미 ‘카메라 루시다’는 어린이의 시선에 맞춘 도슨트의 쉽고 재미있는 설명과 함께 하는 전시 체험 프로그램 ‘어린이 오디세이’(참여비 1만원)와 카메라의 사용법을 익히고 모듬활동을 통해 친화력을 키우는 사진 체험 프로그램 ‘카메라 똑딱똑딱’(참여비 3만원)으로 이루어집니다. 모든 프로그램은 전화로 예약 바랍니다. 02-2000-6471, 6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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