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미 범죄인인도조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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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미 (韓美) 양국 정부가 10일 서명한 범죄인인도조약은 두 나라의 긴밀했던 관계로 보아 때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나라 국제사법공조체제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할 만큼 의미가 있고 기대도 크다.

관계장관이 서명하는 자리에 이례적으로 두 나라 정상이 참석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 조약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조약으로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 범죄인의 피난처가 될 수 없게 됐다. 그러므로 이번 조약체결은 범죄자는 반드시 처벌된다는 사법적 정의를 세우는 계기로서 의미가 있다.

사실 그동안 미국은 우리나라 범죄자들에게는 안심할 수 있는 도피처였고 천국이라고까지 알려져 왔다.

해외도피범의 60%, 특히 권력형 비리사범과 거액 사기.횡령 등 경제사범은 거의가 미국으로 달아나 현재 수사 진행중인 도피자만 3백50여명이고 검찰.경찰.관세청의 수배자를 합치면 3천여명으로 추산된다니 조약의 필요성을 알 만하지 않은가.

조약을 맺지 않은 나라에는 범죄인을 넘겨주지 않도록 규정한 미국 국내법도 범죄인들을 안심시키는 한 요소였다.

이같은 현실에서 미국과의 범죄인인도조약은 우리나라쪽에 훨씬 필요성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여러차례 조약체결을 제의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지만 미국측은 그때마다 국내의 인권사정 등을 이유로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던 것이다. 그동안 형사사법절차에 신뢰가 없는 국가와는 조약을 기피해 온 미국의 전통으로 보아 이번 조약체결은 한.미간 형사공조의 제도적 틀을 확고히 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또 범죄후 도피할 곳이 없다는 인식을 심어줘 범죄예방이나 경고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화시대에 국가간의 긴밀한 형사사법 공조는 이해 (利害) 관계를 떠나 불가피한 추세다.

우리의 범죄인인도조약은 미국이 10번째로 아직 더 많은 나라와 맺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아직 사법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일본.중국과의 협력관계 구축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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