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거짓말보다 통계가 더 무서워질 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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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호 35면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즐겨 쓰던 말이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거짓말이 있다. 첫째는 거짓말이다. 둘째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셋째는 통계다.” 통계청장으로 부임하니 강의를 들었던 수강생이 e-메일을 보냈다. 그때 했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고 그런 말을 한 교수가 통계청장을 하니 기대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통계가 새빨간 거짓말을 능가하는 거짓말이라고 한 것은 통계 자체를 비난하기보다 진실을 왜곡하기 위한 도구로 통계를 잘못 만들거나 잘못 사용하는 경우를 경계하자는 의미다.

최근 통계청에서 나오는 각종 경제지표가 현실과 괴리감이 크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 대표적인 것이 물가다. 소비자물가가 체감물가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물가가 올라 생활고에 시달리는데 통계청에선 ‘물가는 별로 안 올랐다’고 발표한다. 국민 입장에서 짜증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대목에서 아무리 통계청장이라도 교육자로서 설명을 해보고 싶은 유혹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평균적인 소비자의 지출에 근거해서 지수를 만든다. 도시 평균가구의 소비지출 패턴을 분석하고 중요도에 따라 489개 품목을 선정, 가격을 조사해 지수를 만든다. 반면에 체감물가는 주로 국민 개개인이 느끼는 물가변동에 근거하므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구입하는 물품의 가격변동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7% 올랐다. 그러나 국민에게 체감적으로 부담이 되는 배추와 고등어, 닭고기는 1년 사이에 각각 107.1%, 43.3%, 41.1%나 올랐지만 가중치가 0.2%, 0.1%, 0.1%에 불과해 소비자물가에 커다란 영향을 주지 못했다. 가중치가 3.1%와 1.1%나 되는 휘발유 값과 경유 값은 각각 -12.9%, -22.9%의 하락세를 보였다. 무엇보다 가중치가 60.4%나 되는 서비스부문의 물가가 2.3% 상승하는 데 그친 것이 전체 물가상승률을 낮게 하는 데 영향이 컸다.

좀 더 설명을 하자면 소비자물가지수는 기준시점과 비교시점을 놓고 가격변동을 계산하지만 체감물가는 개인들이 물건 값이 가장 쌀 때와 현재를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개인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가격변동 외에도 생활수준이 좋아지고 가구 구성원이 늘고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소비지출이 늘게 되는 데 따르는 소비지출액 증가분까지 포함하게 된다.

또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값이 내리는 데는 무디고, 오르는 것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 잘 인식한다는 심리적 요인도 체감물가와 물가지수의 괴리가 커지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렇다고 통계청이 이런 핑계를 대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은 조사대상이 되는 품목이나 가중치를 현실에 맞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괴리를 좁히지 못하면 지역이나 비슷한 품목별로 지수를 구체적으로 산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미 이런 차원에서 생활물가지수와 신선식품지수를 보조지표로 작성해서 공표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하위지수를 구체적으로 산출해도 체감물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한 괴리 해소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지표를 너무 많이 만들면 비용도 들거니와 이용자들이 혼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통계는 한 국가나 기업·가정·개인이 목표지점을 향해 열심히 배를 저어 가는데 꼭 필요한 나침반이다. 정확하고 신뢰성 높은 통계가 제때에 만들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통계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통계를 잘못 사용하면 정말 새빨간 거짓말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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