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6·4지방선거 현장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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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6.4지방선거가 국민들의 정치 냉소주의만 심화시킨채 여야 정당 및 후보간의 진흙탕 싸움으로 끝날 것 같다. 중앙일보가 서울.부산 등 광역단체 4곳 후보들의 TV토론 (무작위 1회 선정) 과 기초단체장 9곳 후보들의 합동연설회장 (지난달 30일) 을 일제히 점검한 결과 이같은 우려가 현실로 다가올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광역단체장 후보들의 경우 공약부문을 평가한 결과 공약제시가 성실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람은 2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보통 (6명) 이거나 부실 (2명) 한 것으로 평가됐다.

또 이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점검한 결과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후보는 1명에 불과했다. 반면 상대후보 공격여부를 따져보니 1명을 제외한 전원이 강도의 차이는 있어도 비방성 발언을 했다.

이런 추세는 기초단체장 후보들의 합동연설회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정당별로는 한나라당이 더 상대후보 공격에 나서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등 네거티브 선거전략을 구사했다.

국민회의 후보들이 상대적으로 정책을 많이 발표하기는 했으나 실현가능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서울시장 후보들은 지난달 28일 TV토론에서 '살기좋은 서울' 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상대후보에 대한 비방과 이에 대한 해명으로 일관하는 바람에 시민들의 눈길을 끌지 못해 시청률은 12%에 그쳤다.

토론에서 최병렬 (崔秉烈) 한나라당후보는 고건 (高建) 국민회의후보의 행적을 집중 거론하면서 "사퇴하는게 온당한 처신" 이라고 몰아붙였다. 崔후보는 공약에 대해서는 "그저께 간단한 몇가지 사항을 발표했다" 는 말로 대신했다.

야당의 네거티브 선거전략 전형을 보여준 셈이다. 高후보는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장황히 설명하느라 시간을 소진해야 했다.

동시에 崔후보의 재산문제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역공세도 취해야 했기에 상대적으로 미래에의 비전제시는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여야후보간 경쟁이 치열한 경기도지사 후보의 지난달 29일 TV토론 역시 야당의 네거티브 전략이 토론회를 주도했다.

손학규 (孫鶴圭) 한나라당후보는 임창열 (林昌烈) 국민회의후보의 사생활과 호남향우회의 지원의혹을 집중 거론했다. 12건의 정책사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7개 분야에서 이견이 없어 공약을 기준으로 후보를 선택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기초단체장 합동연설회장 역시 인신공격성 발언이 무성했으며, 그나마 내놓은 공약은 실현성이 없는 것들이 많았다.

서울서초구의 경우 조남호 (趙南浩) 한나라당후보는 황철민 (黃哲民) 자민련후보의 삼풍관련 전력을 들추며 "면죄부를 주면 안된다" 고 호소했으며, 黃후보는 趙후보의 주장에 대해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 이라는 저급한 표현으로 반박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려야할 선거가 이런 식으로 치러짐으로써 자격이 없거나 검증안된 인사들이 IMF시대의 지역리더로 뽑힐 위기에 처한 셈이다.

오병상.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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